증가 일변도였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이례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내년 국가 주요 R&D 예산은 21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3.9%나 줄어든다. 2016년 이후 8년 만인데, 당시 감소 폭은 0.4%에 불과했다. 일반 R&D를 포함한 전체 R&D도 15%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국가 전체 R&D 삭감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다.

과학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간 R&D 예산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 R&D 예산은 10조원 이상 급증했다. 2020년 이후에는 한 해 3조~4조원씩 불어났다. 예산 폭증보다 더 큰 문제는 연구비 배분 방식으로, 과학 분야까지 정치 프레임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자 소부장을 육성한다며 다급히 예산을 투입했다. 연구개발이란 것이 원래 오랜 시간을 두고 성과가 나타나는 법인데, 정치적 명분에 쫓겨 무분별하게 예산을 퍼부은 것이다. R&D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예산 배정을 확대하고, 연구비 배분에서도 수월성 기준보다는 지역, 성별, 연령별로 고루 분배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R&D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로 지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R&D 기획 단체가 해당 과제를 수행하는 ‘셀프 수주’, 100억원대 정부 부처 과제를 200여 개 기업에 나눠주는 헬리콥터 식 예산 살포, 중소기업에 연구계획서를 대리 작성해주고 연구비에서 수수료를 떼가는 브로커 구조까지 만연해 있었다. 이번 예산 책정에서 이런 비리 구조를 배격하고 양자, 2차전지 등 핵심 분야에 예산을 확충하기로 한 방침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다. 과학계 전체가 카르텔 공범으로 매도돼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연구자의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 예산 압박을 받다 보면 장기·도전적 과제는 피하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할 수 있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