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수출 블랙리스트를 통해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는 중국 대형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중국 전역에서 비밀 반도체 제조 설비를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이름의 반도체 시설을 매입하거나 건설하는 등 ‘그림자 제조업체’를 통해 미국 제재를 피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23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를 인용해 화웨이가 기존 반도체 공장 두 곳 이상을 인수했고 새로운 공장 3개 이상을 짓고 있다고 보도했다. SIA 자료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반도체 생산에 뛰어들었으며 중국 정부와 선전시로부터 약 300억달러를 지원받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미국 수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G용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거나 공급받을 수 없게 된 데다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OS)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화웨이는 2020년 2분기 5580만 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해 세계 출하량 1위에 올랐으나, 미국의 제재로 같은 해 4분기 출하량은 세계 6위인 3300만 대로 급감했다. 현재는 중국 내에서 5위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반도체 기업을 건설해 우회로를 만들 경우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반도체 장비 및 기타 재료 등을 간접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수출 통제 상황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업데이트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 보호를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IA는 미국 인텔, 한국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세계 반도체업체 대부분을 대표해 로비하는 그룹으로 알려졌다. SIA가 블룸버그에 이 같은 내용을 전한 것도 회원사에 경고하는 차원인 것으로 분석된다. 화웨이 같은 블랙리스트 기업과 숨겨진 관계가 있을 수 있는 기업과 협업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미국과 갈등 중인 중국은 현재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SIA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은 2030년까지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23개의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의 자본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