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중앙당에 내린 ‘지시 사항’이라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방 정부가 산책로·등산로 같은 다중이용장소 등에 대해 안전 점검을 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최근 연이은 묻지마 범죄로 국민 불안이 커지자 이 대표가 지방자치단체에 치안 상황 점검을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국민적 우려를 덜기 위해 지자체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야당 대표가 지방 정부에 구체적인 행정 업무를 지시하고, 이 사실을 당이 공개한 건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속 정당이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은 정책 협의나 업무 협조 요청의 대상이 될 순 있어도 당 대표가 일방적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다”며 “설사 정치 논리에 따라 업무 지시가 가능하다고 해도 표현상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며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소속 국가에 국제적 연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는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이 대표의 이번 안전 점검 ‘지시’와 사안의 무게는 다르지만, 갖고 있는 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내에서조차 현실성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1특검·4국정조사’ 동시 추진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건 결국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고 이 대표의 리더십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지층의 환호를 받을 만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위기를 최소화하려는 행보를 취하고 있어서다. 실제 이 대표는 이날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았다. 백현동 개발 의혹으로 검찰청에 출두해 조사받은 지 엿새 만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가 극대화될수록 이를 분산하기 위한 무리수가 넘쳐날 것”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