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日시장을 이해하는 열쇠…일본인 가계부 해부③에서 계속
일본 정부의 기대대로 매년 물가가 2%씩 오른다고 가정하자. 은퇴한 노부부가 10년 후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생활비는 월 28만3000엔(약 256만원), 여유롭게 사는데 필요한 생활비는 월 46만2000엔으로 오른다.

지금보다 각각 5만1000엔과 8만3000엔이 늘어난다. 물가가 오르면서 매년 100만엔씩 저축할 수 있을 지도 자신할 수 없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앞서 살펴봤던 평균적인 일본 4인 가정의 가계결산을 다시 검토해 보자. 최근의 물가상승률 3.6%(식비 5.9%, 전기가스수도요금 15.2% 상승)와 소득 증가율 2.2%를 적용했다. 그 결과 연간 지출이 612만8000엔으로 3.6% 늘어난 반면 수입은 704만4000엔으로 2.2% 증가하는데 그쳐 저금할 수 있는 여윳돈이 91만6000엔으로 줄었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게다가 물가가 오르면 현금의 가치는 떨어진다. 현재 1000만엔인 현금의 가치는 10년 후 820만엔, 20년 후 672만엔으로 줄어든다. 가계결산표에서 본 것처럼 노후 생활자금에서는 특히 식비와 전기·수도료 등 공과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둘 다 물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항목들이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지진과 쓰나미, 호우 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하거나 큰 병에 걸리는 등 예정에 없던 지출이 생기기라도 하면 20~30년 후의 생활은 지옥이 될 수도 있다.

2019년 외국계 생보사 PGF생명이 60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평균 저축액(부부인 경우 합산치)은 2956만엔이었다. 하지만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는 저축액이 2000만엔을 밑돌았다. 저축액이 100만엔도 안된다는 응답자가 24.7%에 달했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고 보면 일본인들이 슈퍼마켓에서 10엔 차이에 민감해 하는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일본에서 마요네즈 가격을 30엔 올린 것만으로 순식간에 점유율이 10% 추락하는 이유다. 일본인들이 짠돌이어서라기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행위인 것이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일본인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이 임금 인상에 목을 매는 이유다. 지난 4일 후생노동성은 올해 근로자 1000명 이상 주요 기업 364곳의 임금인상률이 3.6%로 30년 만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36대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은 3.99%다.
"노후가 지옥될 수도"…단 '30엔'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하지만 8월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임금은 -2.5%로 1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30년 만의 최고치인 올해 임금인상률도 기업들이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정부의 팔 비틀기에 못 이긴척 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내년에도 3% 이상의 임금인상률을 이어가 실질 임금을 플러스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만성 디플레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지는 여기에 달렸다. 일본은행과 전문가들이 올해 임금협상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내년 임금 인상률을 주목하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