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의미의 변모

어느 분야나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이 변모되기 마련이지만, 디자인은 그 변화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토대로 그 외연을 그리는 일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디자인’은 본래 ‘계획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을 통해 실용성, 경제성 및 기계적 심미성을 실현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위해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 결과 산업화를 기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자국어로 번역하지 않은 체 그대로 사용했고, 그 개념 역시 여러 나라에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며 발전해 왔다. 그리고 현대의 디자인은 더 이상 생산의 방법과 기술만을 두고 정의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창작자로서의 디자이너와 이를 향유하는 사회 문화적 속성이 부각되고, 디자인의 미학적인 부분이 조명되어 있다. 일상 속에서 미적으로 감도가 높은 것들을 따로 떼어나 디자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또 디자이너의 사고법과 디자인 방법론이 주목받으며 혁신, 열린 사고방식을 이끄는 분야로서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한국의 디자인 발전

그렇다면 한국의 디자인 문화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한국 디자인의 역사는 정치 경제적 상황과 긴밀히 맞물려 있었다. 디자인학과는 이미 1946년 종합 대학의 분과로서 신설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이나 1970년대 즈음부터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2년에 처음 한국에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협회를 탄생으로 조직화되었다. 이때부터 더 다양한 협회나 학회 등이 생겨나면서 디자인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본격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수출과 산업진흥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은 1980년대이다. 이때까지도 한국에서 디자인은 주로 전자제품, 자동차, C.I, 포스터, 인테리어 등의 산업디자인을 의미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적 발전과 함께 디자인의 문화적 해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디자인 대중의 성장

디자인을 즐기며 감상하는 계층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전시 수의 증가와 각종 페어의 활성화된 점과, 각 행사의 관람객 수 역시 양적 증가를 보인 점에서 예술 디자인의 관객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시작된 <서울리빙디자인 페어>는 국내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행사 중의 하나이다. 국내외 디자인 업체의 참여를 통해 디자인의 실제적 흐름을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카림 라시드, 조지 나카시마, 하이메 히욘 등의 특별전을 기획해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디자이너들이 큐레이션하는 ‘디자이너 초이스’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누적 관람객은 150,918명, 매해 관람객이 늘어 2022년 리빙디자인페어는 147,096명, 2023년 리빙디자인페어에는 150,000명에 육박했다.

2018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경우 45일 행사 기간 동안 관람객 25만 명이 방문했으며 이는 10만7천여 명과 비교해 130%, 2013년 관람객 21만여 명보다 19% 각각 늘어난 것으로 디자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증대를 엿볼 수 있다.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현장 관람객 5만여 명을 비롯해 온라인 전시 8만여 명 등 약 13만여 명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별전과 팝업 전시, 국제컨퍼런스 등을 포함하면 총 관람객 수는 약 4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1호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씨는 대림미술관의 ‘핀율 탄생 100주년 북유럽 가구 이야기’ 전에 1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에 주목하며 “지속적인 성공적인 디자인 전시만 봐도 대중에 대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화적 생산자로서 한국 디자이너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는 디자인의 다양한 발전과 성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20년에 이른 지금 디자인은 다양한 맥락 안에서 소통되고 있다. 디자인의 문화적 성숙은 예술인 관련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예술인」은 예술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서 그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정의되고 있다. 하위 법령에 따르면 그 활동은 전시 실적으로 증빙되는데 한국에서는 예술인 복지를 위해 예술인 등록이 가능한 11개 분야 중 미술 분야의 하위 항목으로서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다.

주목해 보는 한국 디자이너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여 디자인을 통해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하는 디자인 작가들의 활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홍익대학교의 교수이자 파주 타이포학교 교장인 ‘안상수’는 탈 네모꼴의 안상수체를 개발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거장으로 2007년 독일의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으며, 세계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One-eye>, <Pa-ti>등의 프로젝트들은 국내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되었으며, <타이포그래피 잔치>등 국내외 유명 단체전과 전시 행사들에 기획, 참여하였다. 이러한 장을 통해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또 그의 개인전, <안상수의 삶-글짜>는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 최초로 해외에 수출되었다.
http://ssahn.com/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
<흘려라>, 안상수, 캔버스에 아크릴, 194*259cm, 2017,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C) 서울시립미술관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
<문자도 영상>,안상수, 6채널 비디오 설치, 슈에슈에재단 백색공단, 2018



‘슬기와 민’은 계원예술대학교 최슬기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최성민 교수로 이루어진 그래픽디자인 듀오로 2006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첫 국내전을 를 통해 올해의 예술가상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이후 ‘매트릭스 (Metrix)’, ‘보이드 (Void)’ 전 등에 참여하였고, 2014년에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어 아틀리에 에르메스 (Atelier HERMES)에서 전시했다. 이후에도 다수의 전시에 작가로서 참여하였다. 미술 프로젝트 그룹 ‘SMSM’의 멤버로도 활동하며 디자인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모색하고 있다.
https://www.sulki-min.com/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
좌 <테크니컬 드로잉>, 슬기와 민, 디지털 프린트, 2015,
우 <두 도시 이야기 전시 포스터> 슬기와 민, 디지털 프린트, 2016




김영나는 2000년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2008년 네덜란드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다시 석사를 한 후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다 한국에서 <그래픽>의 9호부터 24호까지 편집자로 일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2011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개인전을,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으며,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오늘의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2015년 두산갤러리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제갤러리 소속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 포틀랜드 FISK 갤러리 등 다수의 해외 전시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http://ynkim.com/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
(좌)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숍, 김영나 (우)<‘Perforated SET v.16’> 김영나, 포틀랜드 FISK 갤러리 전시, 2019,



잭슨홍은 현재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제품디자이너로 뉴욕 ECCO Design 디자이너, 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 디자인팀 디자이너를 지냈고,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입체디자인학 석사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05년 쌈지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그 역시 아틀리에 에르메스(Atelier HERMES), 국립현대 디자인관 개관전, 북서울시립미술관 전 등을 비롯해 여러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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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홍의 사물 탐구 놀이, 2018



‘페이크’ 시리즈와 ‘스파게티 샹들리에’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박진우’ 대구대학교 교수는 2003년에 네덜란드 잡지 '프레임(Frame)' 주목받는 디자이너 100인에 선정되었다.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전시한 ‘가구가수’를 통해 2014년 홍콩 아티버서리에 초정되었고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parkzinoo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
(좌) <페이크> 작업 중 하나,박진우 (우) <스파게티 샹들리에,> 박진우



계원조형예술대 가구디자인과 부교수 하지훈은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와 덴마크 디자인 스쿨 가구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과 2009년, ‘차세대 디자인 리더’에 뽑혔고 2009년에는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상하이 번드 18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밀라노, 스톡홀름, 도쿄, 쾰른, 뉴욕, 두바이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영국 V&A 뮤지엄, 독일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www.jihoon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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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나주 소반>, 하지훈, 폴리에스테르 (우) <한옥 음식 덮개와 쟁반>, 하지훈, 패트와 나무



이들의 작품은 모두 기계주의 생산 미학을 벗어난, 디자이너로서 또는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디자인이 가진 표현과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가는 행보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의 표현들 속에 여러 디자인들은 이제 문화를 해석하는 기호로서 역할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디자이너의 탄생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잭슨 홍에서 김영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