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구림의 개인전을 찾은 관람객이 설치작품 ‘음과 양 21-S 75’(2021)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구림의 개인전을 찾은 관람객이 설치작품 ‘음과 양 21-S 75’(2021)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내 작품에 대해 ‘아방가르드’라고 말하는데, 미안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그런 작품이 하나도 없어. 고리타분한 것만 늘어놓고 새로운 파격적인 작품을 못 보여줬네. 여러분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韓 실험미술 대가의 '부끄럽지 않은' 어제와 오늘
지난 24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구림 작가(87·사진)가 입을 열자 좌중이 술렁였다. 그는 이곳에서 25일 개막한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얘기를 쏟아냈다.

사정은 이랬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김 작가는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발표한 설치작품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선보이려 했다. 미술관을 천으로 묶듯이 천으로 건물 외벽을 두르는, 김구림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이 등록문화재라는 게 문제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허가를 받고 안전문제를 검토하는 데만 1~2년이 필요하다”며 전시기한 내에 작품 설치가 어렵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자 김 작가가 “행정이 예술을 훼손한다”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명한 것이다.

이번 해프닝에 대해 미술가에선 “김구림답다”는 반응 일색이다. 앞뒤 재지 않고, 누구 눈치도 보지 않는 김구림 특유의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시 한번 나왔다는 이유에서다. 김구림은 정규 미술교육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다. 1958년 첫 전시를 연 뒤 설치미술, 보디페인팅, 대지미술, 실험영화, 연극 등 장르의 틀을 벗어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0~197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제4집단’ 결성에 앞장서며 한국 전위예술에 큰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비주류였다. ‘돌직구’ 같은 그의 성격도 영향을 미쳤지만 학연으로 똘똘 뭉친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 탓도 컸다. 해외에선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내에선 그 누구도 김구림을 밀어주지도, 끌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김구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이번 전시가 김구림에 대한 ‘달라진 평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생존 작가 최고의 영예’로 불리기 때문이다. 시점도 그렇다. 다른 때도 아닌, 9월 6일부터 열리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에 맞춰 개막해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즈음 대거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큰손과 갤러리스트들에게 보일 한국 현대미술의 ‘얼굴’로 그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김구림이 70년에 걸쳐 구축해온 미술세계를 230여 점으로 풀어냈다. 회화 작품 ‘핵1-62’(1962), 1969년 선보인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 ‘전자예술 A’를 올해 다시 제작한 작품, 같은 해 완성된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 등이 전시장에 나왔다.

신작으로는 교통사고 등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재해를 주제로 한 설치작품과 전면 거울을 활용한 대규모 미디어 설치작품이 있다. 그가 1980년 이후 천착하고 있는 주제 ‘음과 양’을 다룬 조형작품들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위예술답게 그의 작품은 마냥 보기 좋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주의해서 꼼꼼히 보지 않으면 이 작품에 대체 어떤 철학이 담겼는지, 발표 당시 왜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는지 놓치기 십상이다.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이 전위예술과 궁합이 맞는지 확인해볼 만하다. 김구림의 별난 작품들에서 예술성과 혁신을 읽거나 아니면 불편한 마음에 빨리 자리를 뜨거나.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