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깨운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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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었던 일본 증시가 깨어나며 급상승하고 있다. 주가 상승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ESG다. 일본 정부와 연기금, 금융기관은 지속가능금융, ESG 투자를 통해 기업가치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일본 증시가 심상치 않다. 올해 니케이 225 지수는 30% 상승했고, 도쿄 증권거래소 토픽스 지수는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에서는 일본 경제의 외적 요인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며, 추가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해석과 일본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동시에 나온다.
급격한 상승 배경과 관련해 3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 14개월 연속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치(2%)를 상회하는 소비자물가 지수 등 양호한 경제 지표, 엔저 효과로 인한 기업이익 개선 기대감, 워런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 비중 확대 등 해외 투자자의 매력도 상승 등이 거론된다.
동시에 투자시장에서는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약 43%를 차지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기업에 대한 거버넌스 개선 기대감이 이 같은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는 해석으로, 그 배경에는 일본이 지난 10년간 준비해온 거버넌스 개혁 중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안착을 위한 노력이 있다.
‘이토 리포트’로 구체화한 세 번째 화살
2012년 12월 잃어버린 20년을 배경으로 탄생한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경제성장을 위한 ‘3의 화살(금융, 재정, 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그중 세 번째 화살이 ‘일본 재흥 전략’으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관련한 정책이 포함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금융과 기업의 선순환 구조라고 판단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 자금 유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외 금융기관이 투자의사 결정에 참조하는 ‘ESG’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 화살은 2년 뒤 ‘이토 리포트’로 구체화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2014년 8월 발표한 이토 리포트는 일본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지침이 담겨 있었다. 특히 리포트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중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기민하게 대응한 것은 일본 공적연금(GPIF)이다. 글로벌 최대 연기금이자 일본 금융생태계 최상단에 위치한 GPIF는 즉각 일본판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하고 이듬해 ‘모든 투자 의사결정에 ESG 요소를 고려한다’는 책임투자원칙(PRI)에 서명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실효성을 위해 ‘투자운용 원칙’도 정립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금융시장에는 ESG 투자를 움직이게 하는 두 수레바퀴에 해당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그리고 ‘거버넌스 코드’가 중심에 자리한다.
도쿄 증권거래소, 거버넌스 코드 제정
일본 투자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투자자가 책임투자 기관으로서 투자수익 추구뿐 아니라 투자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지속가능성 이슈와 관련해 기업과 적극적 대화, 즉 기업 관여(engagement)를 하기 시작했다. 의결권 행사 기준과 결과를 공개하고, 이해 상충을 방지하는 방침을 공표하며 투자 기업의 경영 현황을 점검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나갔다.
이어 GPIF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날 무렵인 2015년 도쿄 증권거래소는 거버넌스 코드를 제정했다. 거래소는 코드를 통해 기업은 중장기적 사업 경쟁력 확보와 투자자 수익 증진을 목적으로 거버넌스 경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준수 또는 설명 원칙(comply or explain)을 적용해 거버넌스 코드를 준수하지 못한 기업은 투자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상장기업에 법적 구속력과 유사한 수준의 거버넌스 개선 의무를 부여한 셈이다. 2021년 개정된 2차 거버넌스 코드는 더욱 강력하다. 2022년 4월 신설된 도쿄 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 기업에 ‘더욱 높은 수준의 거버넌스’ 개선 요구 사항을 담았다.
스튜어드십과 거버넌스 두 코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중장기적 기업가치 향상’, ‘거버넌스’, ‘인게이지먼트’, ‘지속가능성 이슈’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두 코드를 활용해 투자 생태계를 구성하는 투자가와 기업이 기업가치 향상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ESG 요소를 중심으로 건설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일본 공적연금, 모든 투자자산에 ESG 반영
특히 GPIF는 ESG 투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일본이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유니버설 오너(거대 규모 투자금으로 세계 자본시장 전체에 폭넓게 분산 운용하는 투자자)이며 자산 운용 기간이 100년으로 설정된 거대 ‘초장기 투자자’인 GPIF에서도 ESG 요소로 표현되는 지속가능한 사회와 금융시스템의 마련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GPIF 입장에서는 특정 기업의 성장보다는 전반적 기업가치 향상이 필요했다. 포트폴리오 내 일부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포트폴리오 전체 관점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ESG 리스크를 고려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결국 GPIF는 ‘모든 투자자산에 대해 ESG 요소를 반영한다’는 것을 투자운용원칙’에 명기하고 모든 위탁운용기관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원칙 도입’, ‘PRI 서명’, ‘중대한 ESG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 활동’ 등을 요청하는 하향식(톱다운)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프라임 시장의 키 드라이버 ‘ESG’
GPIF가 앞장서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했다면, 도쿄 증권거래소는 투자자를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 2022년 4월 도쿄 증권거래소는 상장 시장을 프라임 (대기업 중심), 스탠더드(중견 기업 중심), 그리고 그로스(신흥 기업 자금 조달 목적)로 재편했다. 특히 주요 대기업이 편입되는 프라임 시장은 해외 투자자가 요구하는 정보 공시 기준과 기업 관여 요건 등을 갖춰 큰 관심을 받았다.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 시장에 속한 기업은 ① 영문 자료를 공시하고 ② 투자자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해 관여가 가능한 조직 및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에 대응하는 문화를 구비해야 한다. 재무 성과가 월등한 기업이라도 해외 투자자와 협업할 수 없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프라임 시장에 상장할 수 없다.
이처럼 프라임 기업은 재무 정보는 물론 비재무 항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비재무 요소인 거버넌스를 프라임 시장 신규 상장 및 상장 유지를 위한 중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일본 자본시장이 기업의 가치에서 비재무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도쿄 증권거래소는 시장을 세분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출시한 JPX Prime150 지수는 거버넌스가 우수하면서도 주가 상승 여력도 높아야 한다. 해당 지수는 S&P500을 벤치마크한 것으로 시가총액 상위 500대 프라임 기업 중 PBR(주가순자산비율)과 ROE(자기자본이익률) 조건을 충족하는 150개 기업으로 구성된다. 투자자 관점의 기업가치 창출 여부(PBR과 ROE)를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ESG 투자자, 특히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맞춤형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다. PBR 1배 이하 기업에 적극 관여
반면, 도쿄 증권거래소는 거버넌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지난 3월 PBR 1배 이하 기업에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 상장기업 중 PBR이 1배 이하인 기업의 비중은 토픽스 500을 기준으로 43%에 달한다. S&P500이 3%, 유로 STOXX 600이 18%인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일반적으로 PBR 1배 이하 기업은 수익성 및 성장성이 시장에서 평가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투자자를 의식하지 않거나 정보 공시가 투자자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1배 이하의 PBR을 기록할 수 있다.
이번 개선 요청을 두고 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을 위해 설정된 금액은 2023년 4~5월 3조7000억 엔(3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조2000억 엔과 비교해 오히려 감소했다. PBR 1배 이하 기업 대상 펀드 설정 금액은 증가하기도 했다. 기업 거버넌스 변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PBR 1배 이하 중 거버넌스가 개선될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거버넌스 개선에 따라 기업가치가 향상될 때 발생하는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일명 알파 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기업과 투자자들은 중장기적 기업가치 향상이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ESG 투자를 통해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껏 시장가치를 고려하는 데 소극적이던 일본 기업이 변하고 있다. 기업은 거버넌스 혁신을 통한 수익 창출 능력(earning power)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는 중장기 투자자로서 지속가능 금융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등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4년 6월 말 아베 전 일본 총리는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세 번째 화살'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돕고 해외 투자자를 끌어당길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거버넌스 혁신과 함께 매력적으로 변한 일본 시장의 지속적 자금 유입과 기업의 ESG 개선이라는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진아 미래에셋증권 ESG 애널리스트
급격한 상승 배경과 관련해 3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 14개월 연속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치(2%)를 상회하는 소비자물가 지수 등 양호한 경제 지표, 엔저 효과로 인한 기업이익 개선 기대감, 워런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 비중 확대 등 해외 투자자의 매력도 상승 등이 거론된다.
동시에 투자시장에서는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약 43%를 차지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기업에 대한 거버넌스 개선 기대감이 이 같은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는 해석으로, 그 배경에는 일본이 지난 10년간 준비해온 거버넌스 개혁 중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안착을 위한 노력이 있다.
‘이토 리포트’로 구체화한 세 번째 화살
2012년 12월 잃어버린 20년을 배경으로 탄생한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경제성장을 위한 ‘3의 화살(금융, 재정, 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그중 세 번째 화살이 ‘일본 재흥 전략’으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관련한 정책이 포함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금융과 기업의 선순환 구조라고 판단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 자금 유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외 금융기관이 투자의사 결정에 참조하는 ‘ESG’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 화살은 2년 뒤 ‘이토 리포트’로 구체화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2014년 8월 발표한 이토 리포트는 일본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지침이 담겨 있었다. 특히 리포트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중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기민하게 대응한 것은 일본 공적연금(GPIF)이다. 글로벌 최대 연기금이자 일본 금융생태계 최상단에 위치한 GPIF는 즉각 일본판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하고 이듬해 ‘모든 투자 의사결정에 ESG 요소를 고려한다’는 책임투자원칙(PRI)에 서명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실효성을 위해 ‘투자운용 원칙’도 정립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금융시장에는 ESG 투자를 움직이게 하는 두 수레바퀴에 해당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그리고 ‘거버넌스 코드’가 중심에 자리한다.
도쿄 증권거래소, 거버넌스 코드 제정
일본 투자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투자자가 책임투자 기관으로서 투자수익 추구뿐 아니라 투자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지속가능성 이슈와 관련해 기업과 적극적 대화, 즉 기업 관여(engagement)를 하기 시작했다. 의결권 행사 기준과 결과를 공개하고, 이해 상충을 방지하는 방침을 공표하며 투자 기업의 경영 현황을 점검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나갔다.
이어 GPIF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날 무렵인 2015년 도쿄 증권거래소는 거버넌스 코드를 제정했다. 거래소는 코드를 통해 기업은 중장기적 사업 경쟁력 확보와 투자자 수익 증진을 목적으로 거버넌스 경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준수 또는 설명 원칙(comply or explain)을 적용해 거버넌스 코드를 준수하지 못한 기업은 투자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상장기업에 법적 구속력과 유사한 수준의 거버넌스 개선 의무를 부여한 셈이다. 2021년 개정된 2차 거버넌스 코드는 더욱 강력하다. 2022년 4월 신설된 도쿄 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 기업에 ‘더욱 높은 수준의 거버넌스’ 개선 요구 사항을 담았다.
스튜어드십과 거버넌스 두 코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중장기적 기업가치 향상’, ‘거버넌스’, ‘인게이지먼트’, ‘지속가능성 이슈’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두 코드를 활용해 투자 생태계를 구성하는 투자가와 기업이 기업가치 향상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ESG 요소를 중심으로 건설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일본 공적연금, 모든 투자자산에 ESG 반영
특히 GPIF는 ESG 투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일본이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유니버설 오너(거대 규모 투자금으로 세계 자본시장 전체에 폭넓게 분산 운용하는 투자자)이며 자산 운용 기간이 100년으로 설정된 거대 ‘초장기 투자자’인 GPIF에서도 ESG 요소로 표현되는 지속가능한 사회와 금융시스템의 마련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GPIF 입장에서는 특정 기업의 성장보다는 전반적 기업가치 향상이 필요했다. 포트폴리오 내 일부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포트폴리오 전체 관점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ESG 리스크를 고려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결국 GPIF는 ‘모든 투자자산에 대해 ESG 요소를 반영한다’는 것을 투자운용원칙’에 명기하고 모든 위탁운용기관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원칙 도입’, ‘PRI 서명’, ‘중대한 ESG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 활동’ 등을 요청하는 하향식(톱다운)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프라임 시장의 키 드라이버 ‘ESG’
GPIF가 앞장서 지속가능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했다면, 도쿄 증권거래소는 투자자를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 2022년 4월 도쿄 증권거래소는 상장 시장을 프라임 (대기업 중심), 스탠더드(중견 기업 중심), 그리고 그로스(신흥 기업 자금 조달 목적)로 재편했다. 특히 주요 대기업이 편입되는 프라임 시장은 해외 투자자가 요구하는 정보 공시 기준과 기업 관여 요건 등을 갖춰 큰 관심을 받았다.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 시장에 속한 기업은 ① 영문 자료를 공시하고 ② 투자자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해 관여가 가능한 조직 및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에 대응하는 문화를 구비해야 한다. 재무 성과가 월등한 기업이라도 해외 투자자와 협업할 수 없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프라임 시장에 상장할 수 없다.
이처럼 프라임 기업은 재무 정보는 물론 비재무 항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비재무 요소인 거버넌스를 프라임 시장 신규 상장 및 상장 유지를 위한 중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일본 자본시장이 기업의 가치에서 비재무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도쿄 증권거래소는 시장을 세분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출시한 JPX Prime150 지수는 거버넌스가 우수하면서도 주가 상승 여력도 높아야 한다. 해당 지수는 S&P500을 벤치마크한 것으로 시가총액 상위 500대 프라임 기업 중 PBR(주가순자산비율)과 ROE(자기자본이익률) 조건을 충족하는 150개 기업으로 구성된다. 투자자 관점의 기업가치 창출 여부(PBR과 ROE)를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ESG 투자자, 특히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맞춤형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다. PBR 1배 이하 기업에 적극 관여
반면, 도쿄 증권거래소는 거버넌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지난 3월 PBR 1배 이하 기업에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 상장기업 중 PBR이 1배 이하인 기업의 비중은 토픽스 500을 기준으로 43%에 달한다. S&P500이 3%, 유로 STOXX 600이 18%인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일반적으로 PBR 1배 이하 기업은 수익성 및 성장성이 시장에서 평가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투자자를 의식하지 않거나 정보 공시가 투자자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1배 이하의 PBR을 기록할 수 있다.
이번 개선 요청을 두고 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을 위해 설정된 금액은 2023년 4~5월 3조7000억 엔(3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조2000억 엔과 비교해 오히려 감소했다. PBR 1배 이하 기업 대상 펀드 설정 금액은 증가하기도 했다. 기업 거버넌스 변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PBR 1배 이하 중 거버넌스가 개선될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거버넌스 개선에 따라 기업가치가 향상될 때 발생하는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일명 알파 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기업과 투자자들은 중장기적 기업가치 향상이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ESG 투자를 통해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껏 시장가치를 고려하는 데 소극적이던 일본 기업이 변하고 있다. 기업은 거버넌스 혁신을 통한 수익 창출 능력(earning power)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는 중장기 투자자로서 지속가능 금융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등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4년 6월 말 아베 전 일본 총리는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세 번째 화살'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돕고 해외 투자자를 끌어당길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거버넌스 혁신과 함께 매력적으로 변한 일본 시장의 지속적 자금 유입과 기업의 ESG 개선이라는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진아 미래에셋증권 ESG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