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커피는 싸구려?…그 편견에 도전장 던진 '라까프 팝업스토어'
뉴요커에게 교외에 있는 할인 체인 ‘타깃’은 2000년 초까지 별 매력이 없었다. 1분1초를 쪼개 바쁘게 사는 메트로폴리탄에게 고속도로를 달려 이 지루한 장소에 쇼핑하러 갈 이유는 크게 없었다. 2002년 11월. 타깃은 맨해튼 첼시 부두의 바지선에 92개 할인 품목을 태웠다. ‘2주간 한정 영업’을 내걸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었다. 때는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전운 사이 혼란의 시기. 타깃이 허드슨강 위에 띄운 과감한 도전에 뉴욕 시민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첼시 부두를 빛낸 이 장소를 팝업스토어(팝업)라고 명명했다.

팝업은 이제 유통업체의 주요 마케팅 전략이 됐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대 팝업의 시대’가 열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비 형태가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는 등 큰 변화가 일었고 장기 임대를 통한 매장 운영이 성공을 담보하는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무하는 팝업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도 있다. 단기에 큰 효과를 누리기 위한 실험적 인테리어는 그만큼의 폐기물을 쏟아낸다. 떴다가 사라지는 광고판같이 팝업은 소비자와의 장기적인 호흡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팝업은 새로운 경험의 시발점이 된다. 어떤 이에게 팝업은 손에 꼽히는 마케팅 대안이 되기도 한다. 가령 서울 신촌의 수제맥주 전문점 뉴타운 매장 한쪽에 문을 연 ‘라까프 팝업’이 그렇다. 방세훈 라까프 공동대표는 캐나다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커피업에 뛰어들었다. 우연히 방문한 베트남에서 그곳의 커피가 지닌 가능성을 엿보고 네덜란드 출신인 티먼 스와이팅크와 라까프를 설립했다.

이들은 회사 문을 열자마자 베트남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라까프 스페이스’를 호찌민에 열었다. 인스턴트에 사용되는 낮은 품질의 로부스타 원두가 아니라 때맞춰 잘 수확하고 가공한 고품질 로부스타를 이용해 말이다. 스페셜티 등급인 베트남 아라비카 커피도 발굴해 블렌드와 콜드브루, 드립백 등의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베트남인에게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호찌민 카페를 기반으로 둔 이들은 베트남 전역을 돌며 농장을 발굴하고 커피 품질 개선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발간된 책이 ‘닥 덴 당(DAC DEN DANG)’이다. 그 제목처럼 ‘걸쭉하고 검고 쓴’ 베트남 커피 산업 내용을 담았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베트남에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커피는 베트남을 점령했던 국가인 프랑스로부터 전파됐는데 아이러니하게 그 잔재가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되는 수출 산업의 역군이 됐다. 1980년대 베트남 커피 산업은 르네상스를 맞아 급성장한다. 그 배경엔 정부 주도로 95% 이상의 커피 농가에 심어진 로부스타 품종이 있다. 값싼 로부스타로 국제 가격의 하한선을 지키는 일은 장기적으로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라까프는 양질의 커피를 재배해 정당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람들, 이상적인 미래와 그 미래를 책임질 주역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서울 신촌에 팝업을 연 이유도 책을 펴낸 목적과 같다. 더 많은 이들이 베트남 커피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랐다. 두 달간 이어지는 팝업에서 라까프는 베트남 커피 농가를 소개하고 연유와 베트남 커피 꿀 등을 활용해 전통 메뉴를 재해석한 음료도 선보인다.

‘팝업의 시대’를 바라보는 우려스러운 시선에도 여전히 많은 이가 각자의 희망을 담아 배를 띄운다. 깐깐한 뉴요커가 허드슨강 바지선 위에 긴 줄을 서게 한 타깃의 팝업처럼 말이다. 라까프의 팝업이 반가운 이유는 그만큼의 기발함과 깊은 의미를 품고 있어서다.

8월 말까지 열리는 이 팝업에 더 많은 이가 함께하기를, 베트남 커피 문화에 담긴 쓰고 달콤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기를.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