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이초 사건' 경찰 학부모 알고도 쉬쉬한 경찰
“학부모 신분을 숨기다 급하게 수사를 마무리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와 접촉한 학부모 가운데 경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자 한 교사는 이같이 울분을 터뜨렸다. 해당 교사는 “‘연필 사건’ 가해 학생 학부모의 직업에 대해 유가족과 동료 교사들이 경찰에 수차례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며 “모든 걸 알면서도 끝내 입을 다문 건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지적했다. 연필 사건은 숨진 교사 학급의 두 학생이 연필로 이마를 긁은 일로 다툰 사고다. 이후 숨진 교사는 ‘업무용’ 휴대폰으로 학부모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해당 학부모는 자신의 직업이 경찰이란 사실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 갑질 의혹’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그동안 경찰이 숨겨왔던 연필 사건 가해 학생 학부모의 직업이 드러나면서다. 경찰은 “수사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의 대응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은 사건 초기 교사의 죽음 원인을 ‘개인사’로 사실상 단정하며 기자들에게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지난달 19일 본지의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실서 1학년 교사 극단적 선택’이란 첫 보도가 나간 뒤 경찰은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죽음의 원인이 학부모가 아닐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경찰도 당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한 건 이례적이다.

사건 초기부터 ‘경찰 학부모’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점에서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은 학부모의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한 시점에도 이를 알고 있었다. 유족은 경찰 학부모가 어떤 식으로든 같은 조직 구성원인 수사 관계자에게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한다.

경찰 주장대로 경위 직급의 실무진에 속하는 학부모가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경찰 학부모의 존재를 명백히 밝히고 수사를 진행했어야 한다. 2019년 단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과 같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때문에 논의가 시작됐다. 수사권 조정으로 더 큰 힘을 갖고 자치경찰 출범으로 ‘공룡 조직’이 된 경찰이라면 특히 이런 오해를 일으켜선 안 된다. 사건의 중요 정보를 덮는 데 급급해한다면 수사 결과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