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아시아나항공 본사 내부 전경. 사진 :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본사 내부 전경.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유럽 승객들에게 자신이 탑승한 항공편의 탄소를 어떻게 상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 항공사가 전적으로 탄소 상쇄에 대한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 승객도 자신이 탑승한 항공기 운영으로 발생한 탄소를 상쇄하고 싶으니 그 방법을 알려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탄소감축 의무가 없는 승객이 탄소 상쇄를 실천하려면 항공사에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ustainable Aviation Fuel, SAF) 비용을 추가 지불하는 방법과 외부에서 탄소감축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탄소 크레디트를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구매하는 방법이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50여 개 항공사가 승객에게 이러한 탄소 상쇄 방안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공하고 있다.

늘어나는 승객 문의

하지만 우리나라는 SAF의 경우 2027년 공급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후변화센터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민간 주도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 단계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와 대상에 따라 탄소시장은 정부 주도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로 대표되는 규제 탄소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과 민간이 주도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으로 나뉜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개인 및 기업, 기관 등이 자유롭게 참여해 탄소 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크레디트 구매

자발적 탄소시장은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에서 2030년 시장규모를 500억 달러로 전망할 만큼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자발적 탄소시장의 핵심 요소인 탄소 크레디트를 인증하는 대표 기관은 베라(미국), 골드 스탠더드(스위스), GCC(카타르), ACR(미국) 등이며 탄소감축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주체도 대부분 유럽과 미국 등 환경 선진국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자발적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해 탄소 상쇄를 시행하더라도 결국 해외로 자본이 흘러 들어간다는 의미다. 뒤처진 자발적 탄소시장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지난 7월 아시아나항공은 기후변화센터와 함께 국내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탄소 상쇄 활동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 항공사가 자발적 탄소시장을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기후변화센터가 연말에 여는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아오라(Aora)를 통해 항공기 이용으로 발생한 탄소량을 계산해 승객이 자발적으로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아오라는 아시아나항공 고객만이 아니라 모든 항공기 승객이 이용할 수 있으며, 비교적 측정이 용이한 항공기 탑승으로 발생한 탄소를 자발적으로 상쇄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또 아오라를 통한 탄소 크레디트 구매로 바이오 스토브 보급, 태양광에너지 생산, 열대림 보존사업 등 개발도상국의 기후 대응 및 탄소감축 활동을 도와 지속가능한 탄소감축 선순환 구조 확립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자발적 탄소시장은 항공산업의 넷제로 계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발표한 항공업계 넷제로 계획을 살펴보면, 직접적 탈탄소 노력만으로는 100% 목표 달성이 어려워 자발적 탄소 상쇄를 포함한 탄소 상쇄 및 포집을 전체 감축량 목표의 19%로 잡고 있다. 항공사가 외부에서 탄소를 상쇄하는 방안은 국가별로 운영하는 ETS와 국제 민간 항공기구(ICAO)에서 운영하는 국제항공 탄소 상쇄·감축제도(CORSIA)를 활용하거나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하는 방법이 있다.
탑승객에게 탄소 상쇄 옵션 제공 나선 아시아나
CORSIA의 경우 탄소 크레디트에 대한 인증 기준만 다를 뿐 실제로 민간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하는 방식이라 자발적 탄소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항공산업의 넷제로 계획에서 자발적 탄소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아, 2020년 미국 델타항공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자발적 탄소시장에 10억 달러 투자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2021년 실제로 자발적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해 2700만 톤의 배출량을 상쇄했다. 또 호주 콴타스항공의 경우 비행기 티켓을 예매할 때 탄소 상쇄비를 추가로 지불한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 많은 선진 항공사가 이미 자발적 탄소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 탄소 상쇄 산업 생태계 육성에도 기여

그러나 자발적 탄소시장에도 한계는 있다. 기업의 넷제로 계획은 외부에서의 탄소 상쇄보다 산업활동에서 직접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 또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 주도 시장이라 탄소 크레디트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정확히 계산한 탄소감축량을 반영한 크레디트인지 확인하기 어렵고, 탄소 크레디트 인증 기준과 기관이 상이하기에 품질과 중복 사용에 대한 검증도 쉽지 않다. 이러한 한계로 자발적 탄소시장이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넷제로 달성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의 활성화된 자발적 탄소시장을 보면 수천 개의 탄소감축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탄소배출권을 생산해 안정적 운영자금을 확보했다. 기후변화센터가 운영 예정인 아오라는 국내에 이러한 탄소감축 프로그램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선적 기부에 의존하는 자발적 탄소시장이지만, 국내에서도 활성화가 멀지 않았다.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따라 2030년까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탄소 크레디트 구매를 위해 자발적 탄소시장을 찾는 고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표준에서 스코프 3(온실가스 기타 간접배출)가 의무 공시 대상에 포함되어 임직원 항공 출장으로 발생한 탄소배출을 상쇄할 목적으로 탄소 크레디트를 자발적으로 구매하는 수요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이 승객을 대상으로 기내에서 유니세프 모금을 실시해 지난 29년간 약 157억원의 자금을 모은 것처럼 이번 기후변화센터와의 협약이 ‘더 나은 내일(better tomorrow)’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최석병 아시아나항공 ESG경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