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대화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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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용걸의 Balancer-삶의 코어를 찾는 여행
!["이런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대화가 없잖아요"](https://img.hankyung.com/photo/202308/01.34344871.1.jpg)
그 날도 아내가 지방 공연으로 집에 없다보니 며칠을 아들과 둘만 있게 됐고, 우리 둘은 자연스레 산책을 나갔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아들과 나 둘 사이에는 고요하고도 적막한 침묵이 흐르게 된다. 늘 그랬듯 그날도 그러했고, 그렇게 아들녀석은 (내가 예상했듯이 정확하게) 내가 그리 탐탁지 않아하는 유형의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만약 아빠에게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도 있고 다 먹을 수도 있지만 햇빛을 단 5분밖에 볼 수 없는 반 지하집이 하나 있고요, 또 다른 집은 하루 중 10시간을 햇빛을 볼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도 다 먹을 수도 없는 꼭대기 층의 최고급 아파트가 있어요. 어떤 집을 선택할래요?”
애매하면서도 괜한 고민까지 하게 되는 이런 유형의 질문을 아들에게 간간히 받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이런 질문을 만들어내는 아들의 성의가 기특해 보답은 해야 할 거 같아 나름대로 고민해서 신중한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답변을 내놓기가 무섭게 녀석은 또 다른 형태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거다.
그날은 제법 피곤했었는지,
“왜 우리 아들은 별 의미도 없는 질문으로 아빠를 힘들게 할까?...” 라며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야 말았다. 역시나 그 대답을 들은 아들녀석은 나를 휙 돌아보며 이 말 한마디를 던져놓고 혼자서 앞질러 집으로 가버렸다.
“제가 아빠에게 이런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빠와 저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잖아요!”
머리를 한대 맞은 듯 멍했다. 터벅터벅 앞서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누구보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아들과 잘 지내고자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왔으며 또한 그런 나 자신이 대견해 뿌듯해 한 적도 많았었는데 …. 오히려 아들녀석이 나와의 관계를 이끌어 나가려 나름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 내가 너무도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나의 믿음들이 이기적인 착각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런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대화가 없잖아요"](https://img.hankyung.com/photo/202308/01.34344872.1.jpg)
“아들을 대하는 나의 생각처럼 어쩌면 'Ballet'도 내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생각하는 나의 직업인 “ballet”가 나의 아들의 존재처럼 오히려 나의 삶을 이끌어 가 주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로 부터 오히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왜 난 몰랐을까.
모든 일들이 순리처럼 잘 풀릴 때야 아들도, Ballet도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일들이 맘처럼 풀리지 않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듯 아들과 Ballet에 대한 원망이나 해대곤 했던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당연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분명 평안함이긴 하지만 그 세 글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잘 생각해 본다면 분명 주의하며 명심해야 할 것들이 숨어 있었다.
나의 “아들”도 나의 “Ballet” 도 그리고 나의 삶 속 모든 것들도 내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들은 운명처럼 내 삶속으로 들어와 지금도 나를 성장시켜주고 있는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며 당연함라는 단어의 의미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매순간 되새겨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