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가 재상승 우려…미국과 다른 한국의 고민 [조재길의 마켓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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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난·고령화·기후 변화에 물가 우려 커져
美·유럽 “中 침체 가시화 땐 인플레 둔화”
중국과 교역 비중 큰 한국은 더 복잡한 셈법
장기 해법 “특정국 의존 낮추고 다변화해야”
美·유럽 “中 침체 가시화 땐 인플레 둔화”
중국과 교역 비중 큰 한국은 더 복잡한 셈법
장기 해법 “특정국 의존 낮추고 다변화해야”
물가 상승 공포가 또 다시 엄습하고 있습니다. 공급난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공급 사슬의 중요한 두 축(미국·중국)이 결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는 고령화되고 있는데, 고령자들은 연장 노동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 대폭 확대했던 통화량 역풍 역시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의 주요 배경 중 하나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곡물 작황까지 좋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일부 국가는 곡물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쌀 수출의 40% 이상을 담당하는 인도는 일부 품종의 해외 판매를 막는 한편 가격도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27일부터 바스마티 쌀을 t당 1200달러 이하에 수출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지난달엔 비(非) 바스마티 백미 수출을 금지했고, 찐쌀 관세 20%도 부과했습니다.
엘니뇨 등 영향으로 가뭄이 계속된 뒤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했다는 게 인도 정부의 판단입니다. 인도의 지난달 식품 물가 상승률은 11.5%로,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였습니다.
여기에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설탕 수출 금지까지 검토 중입니다. 인도는 세계 2위 설탕 생산국입니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후 한햇동안 32개 국이 77건의 식품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올해 19개국 25건으로 줄었으나 최근 수개월새 다시 증가세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가 7월 기준 123.9(2014~2016년의 평균값이 100)로, 전달(122.4) 대비 상승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식용유 가격 지수는 한달만에 115.8에서 129.8로 급등했습니다.
한국 내 식료품 물가도 불안합니다. 식량 자급률(쌀을 제외하면 2021년 기준 20.9%)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밀 자급률은 1.1%, 옥수수 4.2%, 콩 23.7% 등에 불과합니다.
한국은행은 이날 내놓은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식료품과 외식 물가는 하방 경직성과 지속성이 높고 기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먹을거리 물가는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대중의 물가 불안을 계속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주말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 미팅에 참석했던 세계 중앙은행 지도자들도 3년 연속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토로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목표 수준인 2%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공급 제약이 진행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수요까지 늘면 광물 금속 등 상품값이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팬데믹 당시보다 압력이 셀 수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공급 충격→생산 차질→비용 증가→물가 추가 상승의 고리가 심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라 알파로 교수가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발표한 논문도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 내 중국 상품(수입) 비중이 줄면서 물가 상승률이 쉽게 꺾이지 못하게 됐다는 게 골자입니다.
알파로 교수에 따르면 작년 미국 수입품 중 중국 비중은 5년 전과 비교해 5%포인트 감소했습니다. 미국의 수입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중국 비중이 줄어든 건 디커플링(미·중 탈동조화) 영향입니다. 가격이 높더라도 중국 대신 다른 나라 제품을 쓰거나 자국 내에서 제조했다는 겁니다. 결국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그럼 지금처럼 높은 글로벌 물가 상승 추이가 얼마나 계속될까요?
‘세계 경제의 블랙홀’ 같은 중국 경제에 달렸다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올해 세계 성장률의 3분의 1을 맡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경제는 올 들어 급속히 퇴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설 자재부터 전자 제품까지 수입을 큰 폭 줄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7월 수출이 2년여만에 처음 감소한 것도 중국이 자동차 반도체 등 일본 제품 수입을 줄였던 영향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이 수요를 줄이면 글로벌 물가 재상승 우려를 낮출 수 있습니다.
BCA리서치의 피터 베레진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 유럽 등과 동시에 침체에 빠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중국 혼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겪는다면 세계 경제엔 그닥 나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CNN은 ‘중국 디플레이션이 서방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Will Chinese deflation help cure the West’s inflation problem?)이란 기사에서 “서방의 물가 문제를 한 방에 해소시켜 줄 촉매가 중국 경기 침체”라고 썼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정보분석 회사인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했던 미국과 유럽 경제엔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내심 중국의 경기 침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이해가 서방과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선 인플레이션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한데, 중국과의 교역 비중은 훨씬 큽니다. 중국 투자가 1% 줄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0.09% 감소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도 있습니다. 주변국보다 감소 폭이 큽니다.
글로벌 물가 재상승 우려 속에서 한국호는 더 고단하고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해외 자산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
설상가상으로 곡물 작황까지 좋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일부 국가는 곡물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쌀 수출의 40% 이상을 담당하는 인도는 일부 품종의 해외 판매를 막는 한편 가격도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27일부터 바스마티 쌀을 t당 1200달러 이하에 수출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지난달엔 비(非) 바스마티 백미 수출을 금지했고, 찐쌀 관세 20%도 부과했습니다.
엘니뇨 등 영향으로 가뭄이 계속된 뒤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했다는 게 인도 정부의 판단입니다. 인도의 지난달 식품 물가 상승률은 11.5%로,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였습니다.
여기에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설탕 수출 금지까지 검토 중입니다. 인도는 세계 2위 설탕 생산국입니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후 한햇동안 32개 국이 77건의 식품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올해 19개국 25건으로 줄었으나 최근 수개월새 다시 증가세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가 7월 기준 123.9(2014~2016년의 평균값이 100)로, 전달(122.4) 대비 상승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식용유 가격 지수는 한달만에 115.8에서 129.8로 급등했습니다.
한국 내 식료품 물가도 불안합니다. 식량 자급률(쌀을 제외하면 2021년 기준 20.9%)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밀 자급률은 1.1%, 옥수수 4.2%, 콩 23.7% 등에 불과합니다.
한국은행은 이날 내놓은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식료품과 외식 물가는 하방 경직성과 지속성이 높고 기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먹을거리 물가는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대중의 물가 불안을 계속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주말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 미팅에 참석했던 세계 중앙은행 지도자들도 3년 연속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토로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목표 수준인 2%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공급 제약이 진행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수요까지 늘면 광물 금속 등 상품값이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팬데믹 당시보다 압력이 셀 수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공급 충격→생산 차질→비용 증가→물가 추가 상승의 고리가 심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라 알파로 교수가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발표한 논문도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 내 중국 상품(수입) 비중이 줄면서 물가 상승률이 쉽게 꺾이지 못하게 됐다는 게 골자입니다.
알파로 교수에 따르면 작년 미국 수입품 중 중국 비중은 5년 전과 비교해 5%포인트 감소했습니다. 미국의 수입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중국 비중이 줄어든 건 디커플링(미·중 탈동조화) 영향입니다. 가격이 높더라도 중국 대신 다른 나라 제품을 쓰거나 자국 내에서 제조했다는 겁니다. 결국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그럼 지금처럼 높은 글로벌 물가 상승 추이가 얼마나 계속될까요?
‘세계 경제의 블랙홀’ 같은 중국 경제에 달렸다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올해 세계 성장률의 3분의 1을 맡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경제는 올 들어 급속히 퇴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설 자재부터 전자 제품까지 수입을 큰 폭 줄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7월 수출이 2년여만에 처음 감소한 것도 중국이 자동차 반도체 등 일본 제품 수입을 줄였던 영향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이 수요를 줄이면 글로벌 물가 재상승 우려를 낮출 수 있습니다.
BCA리서치의 피터 베레진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 유럽 등과 동시에 침체에 빠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중국 혼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겪는다면 세계 경제엔 그닥 나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CNN은 ‘중국 디플레이션이 서방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Will Chinese deflation help cure the West’s inflation problem?)이란 기사에서 “서방의 물가 문제를 한 방에 해소시켜 줄 촉매가 중국 경기 침체”라고 썼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정보분석 회사인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했던 미국과 유럽 경제엔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내심 중국의 경기 침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이해가 서방과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선 인플레이션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한데, 중국과의 교역 비중은 훨씬 큽니다. 중국 투자가 1% 줄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0.09% 감소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도 있습니다. 주변국보다 감소 폭이 큽니다.
글로벌 물가 재상승 우려 속에서 한국호는 더 고단하고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해외 자산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