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전무, 사장 심부름하며 머슴처럼 일했다"…퇴직금 달라는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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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등기임원 퇴직 앞두고 소송
법원 “문서결재·복지 누려” 사측 손 들어줘
등기여부가 관건 … 권한·책임 있는지 중요
우선 전결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고 연봉도 급상승한다. 법인카드의 비용 한도가 늘어나거나 개인 집무실, 법인차량이 제공되는 등 처우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임원이라고 다 같은 임원이 아니다. 특히 임원이 퇴직하면서 "명색이 좋아 임원이지 직원처럼 일했다"며 '퇴직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원은 임명될 당시 퇴직처리를 하고 새로 계약을 맺으면서 근로자로서의 기존 근무기간에 대한 퇴직금은 지급받는다.
경영권을 행사하는 임원의 경우 '근로자'가 아니므로, 회사가 임원 재임기간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 이 경우 회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런데 35년 만의 퇴직을 앞둔 A는 돌연 회사에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대표이사와 관계가 틀어지면서다. A가 2017년경 회사 주식 4만5000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표이사가 명의신탁주식 실제소유자 확인 신청을 거쳐 위 주식을 환수하게 된 것이다. A는 주식을 되찾기 위해 부당이득 또는 주식인수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상황이었다. A는 "형식은 등기이사로 전무이사직에 있었지만, 사실상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일 없이 미리 지정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맞춰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등 그 실질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등기임원으로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아 회사의 경영을 총괄하고 실질적인 내부 경영을 도맡아 왔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달 21일 A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퇴직금 청구의 소에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전무이사 지위가 형식적이라는 A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내부 문서는 물론 거래처 등 외부와 주고받은 문서에서도 A의 서명이 발견되고, 이사회 의사록이나 인사(징계)위원회 회의록에 A의 서명·날인이 확인돼, 실제로 임원으로서 문서를 결재하고 이사회나 인사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업무집행권을 행사했던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A가 회사 자금으로 상당한 복지 혜택을 누린 것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A가 2011년~2018년까지 주말, 공휴일에 백화점, 미용실, 피부관리업체, 마트, 아울렛 등에서 4000만원 이상을 사용하고, 2012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가지급금, 급료 가불금, 일시 가불금 등의 명목으로 5776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회계처리돼 있다"며 "A의 아들과 조카 두 명도 회사에 고용돼 상당 기간 근무했고, 특히 아들은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에 회사의 자금으로 회사의 업무와 상관없는 작곡 업무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임원 연봉 계약'에 A가 임원이고, 퇴직금 중간 정산 이후의 퇴직금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점도 지적했다. A는 계약서가 자의적으로 작성된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A의 아들의 취미생활(음악)을 위한 기기 및 자금 지원까지 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였다"며 "A가 자유의사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추인된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A는 "회사에서 대표이사를 보좌해왔고, 그 과정에서 대표 이사의 자식을 돌보거나 의류를 준비하는 등 개인적인 심부름까지도 도맡아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대표이사와 A 사이에 업무집행권한의 범위 및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를 넘어서 A가 대표이사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에 있었다거나 업무집행에서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판례는 먼저 등기임원인지, 비등기임원인지를 중요한 구분 요소로 본다. '등기임원'의 경우엔 상법상 정해진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고 회사로부터 일정한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자이므로 정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게 판례의 경향이다. 하지만 등기 임원이어도 '형식적·명목적'으로만 이사에 불과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면 비등기임원의 경우에는 두부 가르듯 판단하기 어렵다. 법원 판결도 회사 내부에서 해당 임원의 권한이나 책임 등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의미다.
결국 임원의 근로자성 판단은 '등기' 여부도 중요하지만, 결국 근로자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권한과 책임, 독자적인 역할'이 인정되는지, 사용자의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임원이 '트러블 메이커'가 됐다면, 해당 임원이 회사 내부에서 가졌던 독자적인 권한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참고로 임원의 근로자성 문제는 임원에 대한 '징계'나 '해고'문제와도 연결된다.
등기임원의 경우 원칙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므로 상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경우 회사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통해서만 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 해당 임원에 대한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할 뿐,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민법이나 상법은) 등기 임원이 비위 행위를 저지른 경우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회사로 하여금 위법행위의 유지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별도의 정직, 감봉 등과 같은 징계조치는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등기임원에 대해서는 주주총회의 결의를 통한 해임 외에 다른 징계가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등기임원에 대한 감봉이나 징계 등의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면 등기임원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면 비등기 임원이라고 해도 반드시 근로자는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취업규칙을 적용해 회사 내규에 따른 징계를 내릴 경우 추후 회사가 퇴직금 지급 등과 관련해 법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법원 “문서결재·복지 누려” 사측 손 들어줘
등기여부가 관건 … 권한·책임 있는지 중요
회사의 임원이 된다는 것은 그 회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클래스에 오른다는 의미다. '별을 단다'는 표현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특히 경영에 대한 권한이 있는 임원은 일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는 다른 취급을 받게 된다.
우선 전결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고 연봉도 급상승한다. 법인카드의 비용 한도가 늘어나거나 개인 집무실, 법인차량이 제공되는 등 처우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임원이라고 다 같은 임원이 아니다. 특히 임원이 퇴직하면서 "명색이 좋아 임원이지 직원처럼 일했다"며 '퇴직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원은 임명될 당시 퇴직처리를 하고 새로 계약을 맺으면서 근로자로서의 기존 근무기간에 대한 퇴직금은 지급받는다.
경영권을 행사하는 임원의 경우 '근로자'가 아니므로, 회사가 임원 재임기간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 이 경우 회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35년 몸담은 등기 임원 “퇴직금 달라” 소송
A는 1983년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에 불과하던 B 제조업체에 입사해 일해 오다가 2012년 회사의 등기 임원(등기 이사)까지 올라 전무이사가 됐다.그런데 35년 만의 퇴직을 앞둔 A는 돌연 회사에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대표이사와 관계가 틀어지면서다. A가 2017년경 회사 주식 4만5000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표이사가 명의신탁주식 실제소유자 확인 신청을 거쳐 위 주식을 환수하게 된 것이다. A는 주식을 되찾기 위해 부당이득 또는 주식인수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상황이었다. A는 "형식은 등기이사로 전무이사직에 있었지만, 사실상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일 없이 미리 지정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맞춰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등 그 실질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등기임원으로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아 회사의 경영을 총괄하고 실질적인 내부 경영을 도맡아 왔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달 21일 A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퇴직금 청구의 소에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전무이사 지위가 형식적이라는 A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내부 문서는 물론 거래처 등 외부와 주고받은 문서에서도 A의 서명이 발견되고, 이사회 의사록이나 인사(징계)위원회 회의록에 A의 서명·날인이 확인돼, 실제로 임원으로서 문서를 결재하고 이사회나 인사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업무집행권을 행사했던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A가 회사 자금으로 상당한 복지 혜택을 누린 것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A가 2011년~2018년까지 주말, 공휴일에 백화점, 미용실, 피부관리업체, 마트, 아울렛 등에서 4000만원 이상을 사용하고, 2012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가지급금, 급료 가불금, 일시 가불금 등의 명목으로 5776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회계처리돼 있다"며 "A의 아들과 조카 두 명도 회사에 고용돼 상당 기간 근무했고, 특히 아들은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에 회사의 자금으로 회사의 업무와 상관없는 작곡 업무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임원 연봉 계약'에 A가 임원이고, 퇴직금 중간 정산 이후의 퇴직금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점도 지적했다. A는 계약서가 자의적으로 작성된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A의 아들의 취미생활(음악)을 위한 기기 및 자금 지원까지 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였다"며 "A가 자유의사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추인된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A는 "회사에서 대표이사를 보좌해왔고, 그 과정에서 대표 이사의 자식을 돌보거나 의류를 준비하는 등 개인적인 심부름까지도 도맡아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대표이사와 A 사이에 업무집행권한의 범위 및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를 넘어서 A가 대표이사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에 있었다거나 업무집행에서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등기’ 여부 중요하지만 … ‘실질적인 권한’크기에 따라 달라
임원의 근로자성 이슈는 회사마다 부여된 임원의 역할과 권한, 책임, 전결의 범위, 업무의 독자성, 근태관리의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하다.판례는 먼저 등기임원인지, 비등기임원인지를 중요한 구분 요소로 본다. '등기임원'의 경우엔 상법상 정해진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고 회사로부터 일정한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자이므로 정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게 판례의 경향이다. 하지만 등기 임원이어도 '형식적·명목적'으로만 이사에 불과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면 비등기임원의 경우에는 두부 가르듯 판단하기 어렵다. 법원 판결도 회사 내부에서 해당 임원의 권한이나 책임 등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의미다.
결국 임원의 근로자성 판단은 '등기' 여부도 중요하지만, 결국 근로자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권한과 책임, 독자적인 역할'이 인정되는지, 사용자의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임원이 '트러블 메이커'가 됐다면, 해당 임원이 회사 내부에서 가졌던 독자적인 권한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참고로 임원의 근로자성 문제는 임원에 대한 '징계'나 '해고'문제와도 연결된다.
등기임원의 경우 원칙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므로 상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경우 회사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통해서만 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 해당 임원에 대한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할 뿐,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민법이나 상법은) 등기 임원이 비위 행위를 저지른 경우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회사로 하여금 위법행위의 유지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별도의 정직, 감봉 등과 같은 징계조치는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등기임원에 대해서는 주주총회의 결의를 통한 해임 외에 다른 징계가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등기임원에 대한 감봉이나 징계 등의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면 등기임원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면 비등기 임원이라고 해도 반드시 근로자는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취업규칙을 적용해 회사 내규에 따른 징계를 내릴 경우 추후 회사가 퇴직금 지급 등과 관련해 법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