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78세의 나이로 별세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은 명암이 뚜렷한 삶을 살았던 '비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30세란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 회장에 올라, 쌍용그룹을 재계 6위까지 성장시키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55세의 젊은 나이에 경영에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지내왔습니다. 중간에 약 2년 동안의 국회의원 활동을 제외하면, 김 전 회장의 인생은 23년의 기업경영, 23년의 야인생활로 정리됩니다.

한경이 1960~1990년대 필름으로 구축한 디지털자산 가운데 김 전 회장의 취임 기자회견부터,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계약식 장면 등 그의 전성기 사진들을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서른살에 회장 취임
1975년 3월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와 취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
1975년 3월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와 취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
1975년 3월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와 취임 인터뷰를 했습니다. 준수한 외모와 '댄디'한 차림의 청년이었던 김 회장은 여유있는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부친 김성곤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의 경영을 맡게된 김 전 회장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귀국,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쌍용그룹에 합류해 부친 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 취임...고성 잼버리 성공 이끈 김석원
1982년 4월 10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 총재로 취임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82년 4월 10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 총재로 취임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1982년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하면서부터 잼버리대회 한국 유치를 도모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주도면밀한 유치작전을 펼쳤고 1985년 4개국의 경합 끝에 한국 고성이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1991년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는 스카우트 역사상 최고의 대회였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공산권에서도 참가했고 다채롭고 독창적인 대회 프로그램과 완벽한 준비상태로 얻은 결과였습니다. 주최측은 고성군 신평리 일대 250만 평의 허허벌판에 5만 평의 대형 야영장, 30만 평의 대집회장, 식당, 병원, 식량보급소, 행글라이딩과 패러글라이딩 시설까지 만들었습니다. 240억 원에 불과한 대회 예산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김 전 회장은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을 위해 유관 부처와 강원도 등의 투자 1200억 원을 이끌어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손잡은 쌍용자동차
1991년 2월 26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와 베르너 메르세데스-벤츠 부회장이 기술제휴 계약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1991년 2월 26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와 베르너 메르세데스-벤츠 부회장이 기술제휴 계약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1992년 11월 1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와 로이터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양사간 자본합작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1992년 11월 1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와 로이터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양사간 자본합작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 애호가였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레이싱 스쿨을 수료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동차 산업 진출을 꿈꿨습니다.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쌍용자동차를 출범시켰고, 코란도를 히트시키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쌍용의 기술은 고급승용차 생산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김 전 회장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기술제휴를 성사시켰습니다. 이로써 쌍용자동차는 히트작 무쏘와 고급 승용차 체어맨, 대형 트럭 등을 생산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벤츠 엔진 단 쌍용트럭 출시
1993년 3월 15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트럭 왼쪽으로 두번째)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쌍용 신차 발표회장에서 새로 출시한 트랙터를 소개하고 있다.
1993년 3월 15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트럭 왼쪽으로 두번째)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쌍용 신차 발표회장에서 새로 출시한 트랙터를 소개하고 있다.
1993년 3월 15일 쌍용자동차는 덤프, 카고, 믹서, 트랙터 등 4개 차종의 대형 트럭을 선보였습니다. 이날 출시한 트럭엔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전경련 부회장 김석원, 최종현, 이건희 등과 골프 회동
1994년 6월17일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경기 은화삼CC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및 고문단 골프 회동에서 김각중 경방 회장(왼쪽), 최종현 전경련 회장(왼쪽 세번째부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과 얘기하고 있다.
1994년 6월17일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경기 은화삼CC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및 고문단 골프 회동에서 김각중 경방 회장(왼쪽), 최종현 전경련 회장(왼쪽 세번째부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과 얘기하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 및 고문단이 1994년 6월17일 경기 은화심CC에서 골프회동을 갖기에 앞서 담소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던 김 전 회장은 최종현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등과 함께 재계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 골프회동 사흘 전인 6월15일, 쌍용자동차의 창원 엔진공장이 준공식을 갖고 대량생산에 들어갔습니다. 3만6000 평 규모의 이 공장에서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기술제휴로 엔진, 트랜스미션, 액슬 등 주요 구동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란도와 무쏘의 핵심 부품을 수입해 사용하던 쌍용자동차는 이때부터 조립업체가 아닌 자동차 제조업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정계진출 기자회견...마지막 환한 웃음
1995년 4월21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회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1995년 4월21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회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1995년 4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회장직을 사퇴하고 정계에 입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을 위해서 정계진출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며 활짝 웃는 김 전 회장의 얼굴이 상기돼 있습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웃는 모습은 이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당성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상황은 어두웠고, 쌍용자동차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고 결국 쌍용자동차는 대우자동차에 매각되는 등 쌍용그룹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김 전 회장은 쌍용 회생을 위해 1998년 국회의원직을 중도 사퇴하고 쌍용양회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2000년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김 전 회장이 중도 사퇴한 뒤 치러진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한 지역구를 고리로, 한 인물은 몰락의 길로, 다른 한 인물은 상승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