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반인반수의 목덜미를 안은 채 길을 나선다. 눈을 감고 있는 소녀는 자신과 닮은 강아지에게 몸을 맡긴 채 자신의 상상 혹은 꿈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옆에는 또 다른 강아지가 짐이 잔뜩 실린 썰매를 끌고 있다. 아련하게 높은 산과 숲을 지나 얼음이 두껍게 차오른 호수를 건너 도착한 곳에는 중세 시대 건축물이 보인다. 이는 마치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크리스마스의 도시 로텐부르크(Rothenburg)를 떠올리게 한다.
추측 Mutmaßung, casein on canvas, 130×170cm, 2013 ©Rosa Loy
추측 Mutmaßung, casein on canvas, 130×170cm, 2013 ©Rosa Loy
로사 로이의 작품에는 여성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간혹 중성적인 인물이나 그림 속 주인공인 여성의 보조적 역할로 남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이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여성을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여성의 캐릭터와 더불어 쌍둥이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츠비카우(Zwickau)의 고향마을을 떠나 라이프치히(Leipzig)로 이주하게 되면서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을 위한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게 되었고 이는 그녀의 그림에 쌍둥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분열된 자아 혹은 도플갱어가 연상되는 이들은 그림 속에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그림에서 그녀의 상상친구는 크리스마스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강아지 몸을 한 반인반수이다. 이들의 여행에 동반자인 또다른 강아지가 끄는 썰매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 검은 쓰레기 봉투가 잔뜩 실려 있다.

쓰레기봉투. 할 수만 있다면 분리수거 봉투에 담아 영원이 버려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다. 순간의 실수, 잘못된 선택, 부끄러운 행동, 혹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걸어온 길이고 내 삶의 일부이다. 불행한 순간을 지우려 하면 할수록 그 기억은 더욱 빠른 속도로 자라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는 법은 그 일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가만히 두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기억의 불길에 땔감을 넣거나 풀무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 엄혹한 터널을 지나 여전히 숨쉬고 있는 나의 오늘, 언젠가 나의 기억이 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내다 보면 종국에는 내가 꿈꾸는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가득한 얼음나라에 도달하게 되고, 그 충만함 속에서 존재감 없이 놓인 검은 봉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958년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의 정원사 집안에서 태어난 로사 로이는 베를린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뒤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며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을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에서 보낸 로사 로이는 라이프치히에서 지금의 반려자이자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예술 동지인 네오라우흐를 만난다. 구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가업(家業)에서 영향 받은 식물적 상상 그리고 독일 통일 이후 더욱 선명해진 여성주의적 사회관은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 형성의 근간이 된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카제인(Casein)을 사용한다. 카제인은 포유류의 젖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치즈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카제인으로 고착된 물감은 빨리 마르는 특성이 있는데 투명하게 수채화처럼 올린 색상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신비로운 효과를 보이며, 작품에 나타난 여성성과 신비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교회의 프레스코화의 재료로 쓰였던 카제인은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지만 부서지기 쉬운 단점이 있기에 캔버스화에는 잘 쓰지 않는 재료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정원에서, 로사 로이(Rosa Loy)
자신의 정원에서, 로사 로이(Rosa Loy)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더불어 작가의 일상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시간이다. 정원 안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씨앗들이 날아와 자리를 잡기도 한다. 그리고 정원의 안과 밖 경계 역시 끊임없는 혼돈과 변화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한다. 자신이 이룬 성취에 기쁨을 느낄 때도 있고 엄혹한 주변환경이나 순간의 실수로 깊은 좌절이나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기쁨과 행복이란 감정은 수많은 고난과 슬픔 그리고 별것 없어 보이는 일상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온전히 아름다운 식물과 꽃으로만 채워진 정원이 없는 것처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인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적당히 지루하고 슬프고 힘든 순간들의 합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지속적인 혼돈의 일상 속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기쁨, 성취와 좌절 등은 따로 또 같이 어울려 각자의 세계를 이룬다. 정원을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들과 우연히 날아든 잡풀들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곳으로 가꾸는 것도, 잡초 뽑기에 집착하다가 지쳐서 정원 가꾸기를 포기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가 마음 둘 곳은 싫어하는 것을 뽑아내는 것에 집착하는 것 보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욱 멋지게 가꾸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잘 가꾼 식물들 사이에 자리한 잡초가 대수롭지 않아 보일 때를 맞을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뽑아도 사라지지 않던 잡초가 쑤욱 하고 힘없이 뽑혀 나갈지도 모른다.

잡초는 정원의 전부가 아니다. 나쁜 기억이 당신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