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텔레마케터 전전하지만…음악인 꿈 '인생 2악장' 펼칠래요
15세때 아동센터서 접한 타악기에 반해
경제적 현실의 벽 부딪혀 대학 진학 포기
월급 절반 저축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
악기의 울림 포기 못해
음대진학 위해 도전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걸까. 생애주기별 ‘숙제’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청년들. 대입, 취업, 연애, 결혼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낙오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 어디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던 이 세상에서 원희동 씨(27·가명)는 음악을 통해 처음으로 텅 빈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질풍노도 시절을 막 지나던 열다섯살 무렵이었다.

운명처럼 나타난 음악. 희동 씨는 음악이 마냥 좋았다. 친구들과 모여 합주를 하는 토요일이 그토록 기다려졌다. 오래오래 음악을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뒤따라주지 않았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엔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눈 앞에 가득했다. 그는 소중한 꿈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뒀다.

성인이 된 희동 씨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택배일 등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나갔다. 그는 여전히 꿈을 향해 항해 중이다. 꿈을 잠시 접어뒀을 뿐이지 언제라도 다시 꿈을 향해 다시 달려나가도 늦지 않았다고 믿는다.

희동 씨는 언젠가 자신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게 소원이다.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음악이 주는 행복을 가르치고 싶다"고도 덧붙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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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27살 원희동(가명)이라고 합니다. 중학생 때 접한 클래식 음악에 매료돼 음악인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15살이 되던 해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느 사회복지재단의 음악 사업을 연결해줬어요. 음악을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문화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악기를 대여해주고 레슨까지 해주는 사업이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아름다운 음을 내는 현악기나 관악기를 선호했지만, 저는 곡 중간에 짧게 등장하는 타악기가 더 좋았어요.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유리병, 파이프, 와인잔 등을 악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타악기의 가장 큰 매력이죠. 선율이 있는 마림바, 실로폰·벨부터 팀파니·작은북·심벌즈·탬버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훈련하기 시작했어요."

▶타악기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에서 맨 뒷자리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 아쉽지는 않나요?
음악은 귀로 한 번 듣고, 마음으로 한 번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 전반에 리듬감을 살려주는 타악기가 빠진다면 오케스트라는 소금 없는 밋밋한 음식과도 같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에 조미료를 추가하는 퍼커셔니스트(타악가)로서 자부심을 느껴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목받는 삶만이 가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뒤에서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빛나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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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기 하면 많은 이들이 그저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편견이 있어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클래식 음악에서 타악기는 아주 짧고 굵게 등장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종종 누구나 가만히 서서 북을 두드리면 된다고 오해가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내고자 하는 음과 소리에 따라 타법도 다릅니다. 팀파니를 예로 들면 헤드의 가장자리와 정중앙 사이 부분을 연주해야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가장자리를 치면 탁한 소리가 나고, 정중앙 부분을 치면 아주 깊은 소리가 나기 때문이에요. 말렛(팀파니 채)으로 헤드를 치자마자 손을 악기의 헤드에 갖다 대 울림을 막는 ‘뮤트’라는 기법도 있어요."

▶희동씨 삶에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음악은 제게 친구이자 살아가는 이유와도 같아요.

학창 시절이 썩 행복하지만은 않았었어요. 어머니가 세 살 때 가족을 떠나서 재봉사인 아버지 밑에서 2살 어린 동생과 함께 컸거든요. 학교랑 센터에서 제아무리 친구들을 사귀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외로움을 떨쳐내기 어려웠어요. 그런 와중에 음악은 제게 숨 쉴 구멍이 돼 주었어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머릿속이 별, 구름,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는 느낌이에요. 멜로디를 들으면 울컥하고, 작은북과 팀파니의 울림을 느낄 때면 제 마음도 덩달아 부풀어 오르곤 해요. 그럴 때마다 온몸에서 도파민이 흘러나와요. 중학생 때 처음 느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성격이 무뚝뚝했는데 음악을 시작한 뒤에는 표현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살가워졌다는 평도 듣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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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음악가의 길을 걷기 위해 도전하셨지만 지금까지는 쉽지 않았다고요.
"늘 음악이라는 꿈을 향해 항해했는데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오래도록 꿈을 미뤄왔어요. 직업계 고교 졸업 후엔 작은 회사에 취직해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갔다 왔고, 음대 학비를 벌기 위해 택배일을 시작했어요. 택배 일을 하면 일한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2년도 안돼서 일을 접어야 했어요. 사고를 당했거든요.

도로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대형 SUV 차량이 ‘쾅’하고 들이받은 거예요. 두 팔과 손이 멀쩡한지부터 확인했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목이 살짝 삐끗하고 다리 인대가 살짝 끊어지는 정도로만 다쳤어요.

손은 지켰지만, 교통사고 트라우마로 택배 일은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이후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구해 현재까지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돌아왔지만, 이제라도 음대에 진학하기 위해 월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모으고 있습니다. 입시를 위해 매주 두 번 과외를 받고, 주말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실력을 닦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중학생 때 참여한 오케스트라에서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었어요. 첫 연주회를 앞두고 했던 마지막 연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매주 토요일 아침 지하 연습실에서 모여 음정을 맞춰 보던 일상의 한 부분이 그날만큼은 괜히 특별한 기념일로 여겨졌어요.

쉬는 시간에 피자를 먹으면서 멘토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과 농담했어요. "1년 동안 이렇게 고생했는데 1악장도 못 끝내고 연주 마치면 어떡하냐?"면서 걱정을 늘어놓는 친구도 있었어요. 무대에 오를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그날 걱정되기도 하고 첫 공연을 한다는 생각에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돌이켜 보면 그런 고민을 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네요."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악기의 울림을 고스란히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 제가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저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큰 아이들이 "어 나도 한번 음악 해봐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으면 해요."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