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자까지 사랑하겠어, 고양이를 사랑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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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거실의 사자>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마티
<거실의 사자>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마티
고양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 장마철이었고,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인공 개울가에 상자에 담긴 채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고 했다. 밖에 두면 죽을 것이 뻔했고, 갈 곳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얼결에 고양이를 거실에 들이게 되었다.
벌써 6년 전, 첫째 고양이 은하의 입성기다. 한 번 거실을 내주니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고양이 세 마리가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유난히 동물에 마음 약한 남편에게 하는 소리 같았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한 당부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신비로운 녀석들에게 홀려, 들이고 또 들일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사료를 먹어도 귀엽고, 물 마시는 것도 신기하고, 자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화장실에서 힘주는 모양새는 또 어찌나 우스운지! 내 애가 새벽에 깨면 얼른 재우려고 안간힘을 쓰던 내가, 고양이가 새벽에 일어나 노는 모습은 핸드폰에 담느라 분주했다. 대체 나는 왜 이토록 저항 없이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걸까. <거실의 사자>는 나 같은 궁금증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탐사기다.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가 곁에 있었던 ‘고양이 집사’인 과학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터커는 '이 작고 교활한 짐승들은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이토록 단단하게 매달리게' 되었는지, ‘나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 고양이들을 내 아이처럼’ 대했는지 문득 궁금해져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인간이 말이나 소, 돼지 등을 가축으로 길들인 데는 다 그들이 쓸모가 있어서다. 고기나 가죽,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런데 고양이는, 이 책에 따르면, 인간에게 무쓸모다. 젖과 고기를 내어주지도, 따뜻한 털을 주지도, 충성심을 발휘하지도 않고, 심지어 (수많은 집사들의 견고한 믿음과 달리) 인간과 공감하지도 않는다. 쥐를 잡기는커녕 쥐와 노닥거리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토종동물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유해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한편 속상하기도, 불편하기도 하다. 내 믿음에 반하는, 사랑스런 고양이의 실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표지를 장식한, 문틈으로 빼꼼 내민 아기 고양이의 얼굴은 천사 같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을 비웃듯 드러낸 무시무시한(?) 이빨을 볼 수 있다. 마냥 귀여운 털복숭이인 줄 알았던 고양이 집사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저 천진한 얼굴에 속아 엄청 물렸지!’ 턱을 만져주면 가르랑거리며 곁을 내주다가도, 영문을 알 수 없이 송곳니를 콱! 내 팔과 다리에 박아넣는다. 그제야 이 녀석이 맹수, 육식동물, 포식자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고양이 잘못일까?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주거지로 끌어들인 것도, 길들어지지 않는 이 동물에게 지레 반해 집을 내어준 것도, 외딴 섬에 고양이를 들여놓아 생태계를 변화시킨 것도 인간이 저지른 일이다. 죄가 있다면, 고양이는 인간 아이처럼 귀여웠고, 인간은 그런 고양이를 사랑했다는 것뿐.
이 책을 읽고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라고 부정하거나 ‘귀여워해줬더니 뒤통수를 치다니!’라며 배신감에 떠는 사람이 있다 해도, 고양이는 그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꼬리를 탁탁탁 칠 것이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벌써 6년 전, 첫째 고양이 은하의 입성기다. 한 번 거실을 내주니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고양이 세 마리가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유난히 동물에 마음 약한 남편에게 하는 소리 같았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한 당부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신비로운 녀석들에게 홀려, 들이고 또 들일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사료를 먹어도 귀엽고, 물 마시는 것도 신기하고, 자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화장실에서 힘주는 모양새는 또 어찌나 우스운지! 내 애가 새벽에 깨면 얼른 재우려고 안간힘을 쓰던 내가, 고양이가 새벽에 일어나 노는 모습은 핸드폰에 담느라 분주했다. 대체 나는 왜 이토록 저항 없이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걸까. <거실의 사자>는 나 같은 궁금증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탐사기다.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가 곁에 있었던 ‘고양이 집사’인 과학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터커는 '이 작고 교활한 짐승들은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이토록 단단하게 매달리게' 되었는지, ‘나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 고양이들을 내 아이처럼’ 대했는지 문득 궁금해져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인간이 말이나 소, 돼지 등을 가축으로 길들인 데는 다 그들이 쓸모가 있어서다. 고기나 가죽,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런데 고양이는, 이 책에 따르면, 인간에게 무쓸모다. 젖과 고기를 내어주지도, 따뜻한 털을 주지도, 충성심을 발휘하지도 않고, 심지어 (수많은 집사들의 견고한 믿음과 달리) 인간과 공감하지도 않는다. 쥐를 잡기는커녕 쥐와 노닥거리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토종동물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유해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한편 속상하기도, 불편하기도 하다. 내 믿음에 반하는, 사랑스런 고양이의 실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표지를 장식한, 문틈으로 빼꼼 내민 아기 고양이의 얼굴은 천사 같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을 비웃듯 드러낸 무시무시한(?) 이빨을 볼 수 있다. 마냥 귀여운 털복숭이인 줄 알았던 고양이 집사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저 천진한 얼굴에 속아 엄청 물렸지!’ 턱을 만져주면 가르랑거리며 곁을 내주다가도, 영문을 알 수 없이 송곳니를 콱! 내 팔과 다리에 박아넣는다. 그제야 이 녀석이 맹수, 육식동물, 포식자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고양이 잘못일까?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주거지로 끌어들인 것도, 길들어지지 않는 이 동물에게 지레 반해 집을 내어준 것도, 외딴 섬에 고양이를 들여놓아 생태계를 변화시킨 것도 인간이 저지른 일이다. 죄가 있다면, 고양이는 인간 아이처럼 귀여웠고, 인간은 그런 고양이를 사랑했다는 것뿐.
이 책을 읽고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라고 부정하거나 ‘귀여워해줬더니 뒤통수를 치다니!’라며 배신감에 떠는 사람이 있다 해도, 고양이는 그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꼬리를 탁탁탁 칠 것이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