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발견은 봄이었고, 이중섭이 주인공이었다. 이 경우는 사실 ‘발견’ 보다는 ‘최초 공개’가 맞겠지만, 어쨌든 처음 보는 작품이 무려 ‘KBS 단독보도’로 세상에 나타났다. 작가의 지우와 그 가족이 소중하게 관리해 온, 그리고 인쇄용지에 유성잉크라는 생소한 재료를 사용해서 그린 정황마저 아주 드라마틱한 작품이었다.
여름엔 장욱진이 주인공이었다. 이건 정말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9월에 열릴 장욱진 전시를 준비하던 가운데, 포기를 모르는 담당 학예사가 일본인 소장가 자택에서 그야말로 ‘전설 속 그 작품’ 〈가족〉을 찾아냈다. 작가 스스로도 그 작품을 그리워해 후에 다시 그렸다던 작품이 발견된 것이다.
무려 이중섭과 장욱진을 주인공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건만, 세상은 별일 없이 돌아간다. 원래 미술계 일이라는 것이 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인 경향이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서 그럴까, 섭섭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도 이런 ‘발견’으로 미술사에 ‘아무도 모르게’ 일조한 경험이 있다. 당시엔 세상의 이목도 끌고 유명해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무관심이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언젠가 이 기억을 되짚을 날이 올 줄 알았다. 사실 칼럼의 주제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니, 어쩌면 오래 전부터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세조의 어진이 다시 나타났을 때,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색채도 하나 없는 초본에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결국 세조의 얼굴이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로 각인된 이정재의 세조와 정말 비슷한지! 결론은 보시다시피,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먼저 보았다. 아무 정보가 없어 누구를 그렸는지도 몰랐다. 이 때 이당이 작업하던 초본이 여럿 나왔는데, 크기 별로 여러 작품이 한번에 둘둘 말려있었다. 윗부분 3분의 1 정도만 펼친 사진들을 넘기는데, 김은호의 대표작인 성춘향, 신사임당, 충무공 등의 밑그림들 사이에 익선관을 쓴 푸근한 얼굴의 남자 그림이 있었다.
채색된 완성작이 몇 없었기에 큰 경매로 진행하기엔 약했지만, 유명작의 초본들이 있으니 ‘이거 말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경매 준비에 착수했고, 실물을 들여왔다. 같이 온 작품들 중엔 작은 조각 그림도 많았는데 궁중 문양 도안을 연습한 듯한 것들도 있었다. 직감이 왔다. 시쳇말로 갑자기 꽂혔다.
그래서 이당 김은호의 모든 도록과 자료를 조사했다. 그러다 관복을 입은 김은호가 어진을 그리고 있는 사진을 찾았고, 그가 어진봉사御眞奉寫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검색 끝에 세종대왕 동상 제작에 관해 이당과 인터뷰한 1969년의 경향신문 기사(1969. 5. 14)를 발견했고, 이 초본의 주인공이 세조임을 알아냈다.
이 모두는 혼자만 알긴 아까운 사연이었다. 그래서 온라인 경매였지만 도록을 만들었고 알아낸 내용 전부를 원고에 꾹꾹 눌러 담았다. 소장자 나름대로는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테고, 검색되는 ‘한줄요약’ 사연에는 경매회사가 마치 내막 따위 모르고 팔아버린 것만 같이 읽히기에,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꼭꼭 씹어 말해본다.
서운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 세조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조어진 초본을 거론하며 이정재와 얼굴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할 때, 나름의 보람은 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이 글을 읽어보셨으니까 언젠가 박물관에서 이 초본을 만났을 때 작품의 뒷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 〈관상〉은 2013년 개봉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세조 역할을 캐스팅 할 때, 그 결정에 이 작품도 꼭 한 보탬이 되기를 살짝,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