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검사가 세운 편의점, 日 훼밀리마트도 넘었다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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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 매장수로 일본 훼밀리마트 추월
한때 훼밀리마트 간판 썼다가 내려
홍석조 회장, 삼성 엑스파일 사건 계기로
엘리트 검사에서 편의점 제왕으로 변신
한때 훼밀리마트 간판 썼다가 내려
홍석조 회장, 삼성 엑스파일 사건 계기로
엘리트 검사에서 편의점 제왕으로 변신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 '검찰 공화국이 됐다' 이런 말이 많았잖아요. 실제로 많은 검사들이 정부 요직 자리를 꿰차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사업가로 성공한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일이 그래서 그런가. 이런 말 있잖아요.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하나님이고, 죄 지은 사람에게는 검사가 하나님이다. 구원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사업은 '갑' 마인드로 해선 안되죠. 아쉬운 소리도 좀 할 줄 알아야 하고, 밑바닥부터 굴러도 보고.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 이런 성공한 사업가 분들 보면 대부분 현장에서 직원들과 뒹굴면서 온갖 고초를 견뎌내고 기업을 일궜잖아요. 그런데, 검사 출신 중에 그 어렵다는 사업가의 길을 가서 성공한, 아니 단순히 성공한 게 아니라 대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BGF 그룹의 홍석조 회장입니다. 한때는 정말 잘 나가는 엘리트 검사였는데, 갑자기 사업가로 전향해서 CU란 이름의 한국의 1등 편의점을 만들어 냈어요. 이번 주제는 검사 출신 사업가가 바꿔놓은 BGF 입니다. 홍석조 회장을 얘기하려면 이 분 집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누님이 홍라희 여사. 맞아요. '재드래곤'의 어머니이자, 고 이건희 회장의 아내 되십니다. 또 형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고요. 부친은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역임한 홍진기 전 중앙일보 창업주 입니다. 내무부 장관 시절에 4.19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 때 내각의 책임자였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어요. 이후에 3년 3개월 만에 풀려나서 사돈인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사업을 같이 하게 되는데요, 중앙일보 창간도 이병철 회장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어요. 이병철 회장의 신뢰가 굉장히 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홍석조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엄청 잘했다고 합니다. 시험봐서 고등학교 들어가던 시절에 최고 명문으로 꼽혔던 경기고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서 대학 재학 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요. 검사로 재직하면서 하버드대 로스쿨 대학원을 나왔어요. 사실 홍석조 회장의 형제들 전부 공부를 잘했어요. 큰 누나 홍라희 여사를 비롯해 4남 2녀인데, 형제들 모두 경기고나 경기여고 나왔고요. 이 가운데 다섯 명이 서울대, 막내인 홍라영 씨는 이화여대를 나왔습니다. 홍석조 회장은 집안 잘 나가고, 돈 많고, 머리까지 좋고. 검찰 안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어요. '홍석조는 검찰총장감이다'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일이 터집니다. 2005년, 삼성의 엑스파일 사건. 삼성이 정치인과 검사들을 돈으로 어떻게 관리하는 지 노골적으로 대화하는 녹취록이었죠. 여기서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이 나오는데요, 이 사건에 휘말려 광주고검 검사장을 끝으로 25년 간 몸 담았던 검찰 조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에 홍 씨 일가가 소유한 보광그룹에서 편의점 사업을 맡아서 운영하게 돼요. 지금은 해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보광이 꽤 큰 회사였는데요. 골프장과 스키장, 리조트 같은 레저 사업과 반도체 같은 IT 사업, 창업투자 등 금융 사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편의점 사업은 주력은 아니었는데 검사 옷 벗고,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옷이 벗겨진 채 편의점 가서 장사하려니까 맘 잡기 쉽진 않았겠죠. 잘 나가던 검사 출신이 편의점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려가 굉장히 많았어요. 임직원들은 또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런데, 이 분 생각보다 경영 수완이 있었습니다. 당시 보광의 편의점 사업은 일본 훼밀리마트를 한국에 그대로 들여와서 하는, 이런 것을 마스터 프랜차이즈라고 하죠. 브랜드와 경영 노하우를 쓰는 대신에 그 대가로 매출의 일정 부분을 본사에 로열티로 내는 것이요. 이렇게 사업 하면 '에이, 누가 못해.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이미 훼밀리마트가 한국 편의점 1등이었고. 그냥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홍석조 회장 중대 결단을 내립니다. 훼미리마트 그만 하자. 언제까지 남의 브랜드 쓰면서 로열티까지 줘야 하냐.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사과나무를 키워 열매도 먹고 하지만, 정작 나무는 우리 것이 아니다" 간판 바꿔 다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거냐, 이렇게 말 할수도 있는데요. 사실은 엄청 복잡한 겁니다. 우선 일본 훼밀리마트와 관계도 있는데,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법적으로 문제될 수도 있고. 사실 법적인 문제야 홍석조 회장이 검사 출신인데, 너무 잘 알았을테고.
가장 큰 문제는 편의점을 운영하시는 점주님들의 반발이었어요. 지금까지 훼밀리마트로 장사 잘 하고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간판 바꿔 달면 이게 잘 될 지 안 될 지 모르잖아요. 제가 편의점 점주라도 싫을 것 같습니다. '그냥 훼밀리마트 하지, 왜 굳이' 이런 생각이 들 법 합니다. 홍석조 회장은 그런데도 밀어 붙였어요. 점포가 계속 늘어나는데 로열티로 나가는 돈도 비례해서 너무 많고. 남의 브랜드 써선 해외로 나갈수도 없고. 무엇보다 일본 브랜드라 사람들 정서도 안 좋았고요. 훼밀리마트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등 일본 편의점 브랜드 전성시대였거든요. GS25가 유일한 토종 브랜드라고 홍보할 때였습니다.
아무튼 홍석조 회장이 점주 분들 달래 주기 위해서 꽤 많은 인센티브를 걸었어요. 브랜드 바꾸는 대신에 광고를 무진장 해서 훼밀리마트보다 더 유명해지게 하겠다. 간판, 로고, 인테리어 바꾸는 것 본사가 돈 대겠다. 그리고 점주와 본사 간 나누는 조건도 더 좋게 해주겠다. 등등 이거 하느라 수 천억을 쏟아 부어요.
그렇게 해서 대망의 새로운 이름, CU가 2012년에 등장하게 됩니다. 벌써 11년이나 됐네요. 저는 CU 간판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씨유, 뭔가 장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GS리테일이 과거에 올리브영 잡겠다며 '랄라블라'란 점포를 내놨었는데요, 이것 봤을 때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도 그랬는데, CU 사장님들은 장난 아니었겠죠. 그래도, 나중에 잘 되면, 이상해 보였던 이름도 좋아 보이고 합니다. 실제로 엄청 잘 됐어요. 이 때 훼밀리마트 편의점 수가 7000개쯤 했는데요, 10년이 지난 작년 말 기준 1만6000여곳 하니까 두 배 넘어갔죠. 점포수 기준으론 GS25와 1위를 다투고 있는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게 또 대단한 게 점포 수만 보자면 훼밀리마트의 일본 내 점포수와 비슷합니다. 아니, 근소한 차이로 CU가 더 많아요. 물론, 일본 훼밀리마트 매장이 한국보다 훨씬 크고, 해외에도 점포가 7800여곳이 있어서 훼밀리마트가 더 큰 회사긴 한데요. 자국 점포수만 보자면, 원조 브랜드와 엇비슷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성장세를 이어만 간다면 훼밀리마트를 뛰어 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요즘에 훼밀리마트를 아예 모르는 젊은 분들도 많죠. 그래도 아직까지 회사 이름에 흔적이 남아 있어요.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회사가 BGF리테일이잖아요. 이 BGF가 보광훼밀리마트의 영문 약자 입니다. 물론 회사는 'Be Good Friends' 의 약자라고 우기고 있죠.
편의점이 옛날에 구멍가게로 불렸던, 영어로는 '맘앤팝 스토어'라고 하죠. 이런 구멍가게를 대체하는 역할을 해요. 동네에서 구멍가게 하는 분들을 점점 보기 힘들잖아요. 이 분들 상당수가 편의점으로 바꿨습니다. 또 자기 사업 새롭게 하려는 분들도 1순위가 편의점이 되곤 해요. 편의점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동네 구멍가게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아요. 매출 기준으로 한국에서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뛰어넘은 지 오래고, 백화점 매출에 근접하고 있어요. 백화점은 명품 같은 비싼 게 주력인데, 컵라면 팔고 사탕 파는 구멍가게 편의점이 백화점과 비슷하다,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죠. 사실 요즘 웬만한 것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많이 삽니다. 매출로 보면 온라인 쇼핑 비중이 거의 절반을 차지해요. 그러니까 나머지 절반이 오프라인 쇼핑인데 이 절반을 놓고 백화점, 마트, 슈퍼, 편의점이 경쟁하고 있고 이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태내는 곳이 편의점이다. 40대 이상, 혹은 50대 이상 분들은 편의점에서 뭐 사는 게 좀 맘이 불편할 수 있어요. 편의점 물건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마트 가서 생수 사면 한 병에 300원이면 사는데, 편의점 가면 700~800원씩 하고. 그래서 중장층은 편의점을 담배 사는 곳, 혹은 커피나 콜라 같은 음료수 정도 사는 곳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MZ 세대는 안그래요. 편의점이 '가성비 있다'고 합니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 그러니까 싸게 좋은 물건 산다는건데. 이게 뭔 소리야. 편의점은 비싼데.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해보세요. MZ 세대는 1인 가구, 많아야 2인 가구 위주죠. 이 분들이 마트나 슈퍼 가서 수박 한 통을 사도 이거 다 먹을수가 없습니다. 수박 한 통 2만원에 사서 절반 버리면 반통에 2만원인 셈이죠. 차라리 편의점 가서 반통에 1만5000원 짜리 사는 게 이 분들에겐 가성비에요. 편의점은 옛날의 그 담배가게도 아니죠. 편의점 매출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하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담배 비중이 뚝뚝 감소합니다. 이게 CU 매출 가운데 담배 비중인데 2018년 41%에 달했던 게 4년 만인 2022년에 37%대까지 확 떨어집니다. 그럼 사람들이 담배 말고 뭐 사냐. 먹는거 사러 많이 갑니다. CU의 매출 구성을 보면 라면, 과자 같은 가공식품이 44%나 차지하고 있고, 닭 튀김이나 어묵 같은 식품 비중도 13%에 달하죠. 사람들은 한마디로 먹으러 CU 간다. 요즘 같은 경기 침체 시기에 장사도 잘 됩니다. 손님 한 명당 편의점에서 쓰는 비용, 이걸 객단가라고 하는데요. 대략 7000원쯤해요. 우리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7000원은 있잖아요. 백화점에서 옷이나 구두는 돈 없으면 사기 힘든데,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캔맥주는 돈 없어도 사잖아요.
근데, 요즘 편의점에 가격도 정말 싼 제품이 많아요. CU의 경우에 '득템 시리즈'란 것을 내놓고 있는데, 예를 들면 개당 400원쯤 하는 득템라면, 1만원도 안 하는 득템 포기김치 뭐 이런걸 팝니다. 대형마트보다 싸요. 그래서 국내 편의점 시장 성장률이 지난해 8.8%나 했습니다. 올해는 조금 줄어서 6%대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이 불황에. CU 운영하는 BGF리테일만 떼어 놓고 보면 올 들어 6월까지, 그러니까 상반기죠. 매출이 4조원에 육박해서 작년 상반기 대비 9.3% 늘었고요, 영업이익도 1150억원으로 6% 가량 증가했어요. 작년 상반기에는 코로나 진단 키트가 엄청 팔려 나가서 코로나 특수를 누렸는데, 이 때보다 더 장사를 잘 했다는 것은 불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장사 잘 하면, 주가도 올라야겠죠. 근데, 주가 보시면 안 올랐어요. 올 들어서만 20% 가량 빠졌습니다. 작년에 장사를 너무 잘 해서, 코로나 봉쇄 다 풀리고 특수를 누렸는데 앞으론 장사 덜 될 것 같다. 이런 인식이 있고요. 또 홍석조 회장이 두 아들에게 승계를 하는 중인데요. 주가가 쌀 때 주식을 넘겨야 돈이 덜 들텐데, 그래서 이게 주가에 불확실성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에 지분을 꽤 많이 넘기긴 했어요. CU를 운영하는 법인이 BGF리테일이고, 이 BGF리테일을 지배하는 게 BGF인데. BGF의 최대주주인 홍석조 회장이 지분의 약 21%를 두 아들에게 시간외 거래로 팔았습니다.이걸 사서 첫째 홍정국 사장 지분이 20.7%로 확 뛰었고, 둘째 홍정혁 사장 지분도 10.5%가 됐습니다.이렇게 많이 넘겼는데도 홍석조 회장 지분이 32.4%로 여전히 가장 많은데요. 이 지분도 넘겨야 할 겁니다. 홍석조 회장이 1953년생, 벌써 칠순을 넘겼거든요. 이 승계 작업이 다 이뤄질 때까지는 회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주가 올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투자자들도 하고 있는 겁니다. 승계 얘기나 나와서 말인데요. 편의점 사업은 첫째인 홍정국 사장이 맡아서 하고, 편의점 이외의 새로운 사업을 하나 만들어서 둘째 홍정혁 사장에게 줄 것으로 보이죠. 홍정혁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BGF에코머티리얼즈란 회사가 친환경 플라스틱, 반도체 소재 사업을 하는 기업들을 하나둘 사들이고 있어요. 승계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BGF리테일은 요즘 CU 편의점 수출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2018년 진출한 몽골에선 매장수가 300개를 넘겨 1등 편의점에 올라섰고, 말레이시아는 2021년에 나가서 벌써 100여곳에 이릅니다. 일본 훼밀리마트에서 독립한 지 11년이 됐는데 지금은해외에 편의점을 수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이런 제조, 하드웨어에 강점이 있지만 요즘은 K팝 같은 소프트 파워도 커지고 있잖아요. 여기에 더해서 편의점, 동네 구멍가게, 별 것 아닌것 같은 업태지만, 모이면 엄청 큰 이런 사업들도 글로벌로 크게 나가면 좋겠습니다. CU가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블랙핑크 같은 K팝 아이돌 컨셉으로 매장을 꾸밀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더 됩니다.
홍석조 회장이 나중에 평가 받을 때 검사 홍석조가 아니라 편의점 제왕 홍석조로 이름을 남기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편의점으로 한국 평정한 CU, 세계적인 편의점으로 성장하는지 눈여겨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