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에서 마주하는 삶의 순간, 프랑스 론 뮤엑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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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미래의 파리통신
낯설음에서 마주하는 삶의 순간, 론 뮤엑 단독전
낯설음에서 마주하는 삶의 순간, 론 뮤엑 단독전
극도로 사실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론 뮤엑 (Lon Mueck)의 단독 전시가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론 뮤엑의 작품을 수집하는 유일한 프랑스 기관으로, 2005년 작가와의 첫 번째 만남을 시작으로, 2013년 전시에 이어 올해 작가의 세 번째 단독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장의 0층과 지하, 총 두 층에 걸쳐 7점의 작품만을 전관하지만, 전시의 규모와 작품이 주는 파장은 결코 미비하지 않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오프닝에 맞춰 제작된 두 점의 신작도 최초 공개된다. ‘혈관이 보일 듯한 피부 표현, 리얼한 신체 주름과 머리카락, 완벽한 신체 비율과 균형’ 론 뮤엑을극사실주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의 특징들이다. 실재보다 더 실제 같은 작품 묘사는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작업은 자칫 사실적 표현에만 치중되었다 보일 수 있지만, 단순히 실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적인 작품을 위한 ‘실제성’에는 이미 작가의 주관, 관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을 찍을 때의 조명, 타이밍, 배경 설정에는 이미 작가의 생각이 개입되게 된다.
론 뮤엑은 의도적으로 작품의 크기와 구조에 변화를 줌으로써 실재와 작품 간의 차별성을 둔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아이, 어른, 동물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은 실재와 구분되지 않는 리얼한 표현으로 익숙함을 줌과 동시에, 크기와 구조의 변주는 예기치 않은 낯섦과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낯익음과 낯설음의 간극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전시장 창문 너머로 수북이 쌓인 해골 작품 ‘Mass (2017)’가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이 작품은, 각 1.5미터 높이의 해골 조형 100개로 구성 되어 있으며, 총 무게는 5톤에 달한다. 천장까지 닿아 있는 해골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마치 새하얀 무덤 사이를 걷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강력한 시각 아이콘인 인간 두개골은 자연스레 개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의 설치와 구조는 더 넓은 죽음의 의미에 닿게 한다. 각기 다른 치아의 개수, 얼굴 형태의 디테일들은 이것이 개인의 집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제목이 군중, 더미, 종교 의식을 의미하듯, 테러, 전쟁, 인간의 가혹행위로 인한 집단 무덤을 연상케 한다.
지지대도 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쌓여 있는 두개골들은, 소멸과 동시에 무작위로 생성되었던 죽음의 개수의 가혹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작품 ‘Mass’의 맞은편엔, 한 여자아이가 누워있다. 탯줄과 혈흔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갓 태어난 여자아이는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 ‘A Girl (2006)’은 신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5m에 육박하는 작품 크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유발한다.
실감 나는 피부 표현은 자연스러운 분홍빛을 띠는 유리 섬유를 주 재료로 묘사되었다. 아이의 몸에 깊숙한 주름들은 오랜 시간 자궁에서 웅크려 있다 막 세상으로 나온 ‘탄생의 순간’을 암시한다. 하지만 어쩐지 큰 공간에 홀로 비스듬히 누운 아이는 외로워 보인다. 실제 신생아의 200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왜곡은, 낯선 세계에 던져져 감당해 나가야 할 삶의 무게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삶의 첫 순간을 알리는 ‘A Girl’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한 ‘Mass’는 아이러니하게도 좁은 통로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새하얀 지지대에 놓인 신생아와 바닥에 무작위로 던져진 해골의 대칭적인 설치는 탄생과 소멸을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두 작품 사이를 왕복할 수 있도록 개방된 전시 구조는, 삶의 순환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지하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검은 개의 무리와 눈이 마주친다.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Untitled’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육중한 크기에 압도되듯, 관객은 저절로 개의 다리 아래에 놓이게 된다. 바짝 응축된 근육과, 앞으로 쏠려 있는 무게 중심에서 상대를 향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최신작으로 공개된 이 세 마리의 개 조형은 경비견인지, 반려견인지 아니면 떠돌이 무리인지 알 수 없다. 돼지를 도살하는 남자들을 묘사하고 있는 또 다른 신작 ‘This Little Piggy (2023)’와 함께 대조를 해본다. 세 마리의 개는 돼지와 같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가? 무언가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편을 위협하고 있는가?.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관계는 다르게 확립된다. 론 뮤엑 작품의 섬세한 표정과 제스처, 정교한 형태들은 출생, 죽음, 시간, 존재, 나약함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한편, 비현실적인 스케일에서 오는 생소함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도록 이끈다.
그는 우리가 보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전복시키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그가 의도하는 세밀할 정도로 작고 무한히 큰 조각들은 단순히 작가의 표현적 테크닉이 아닌,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자 견해인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주는 낯선 감각에서 뜻하지 못한 삶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고,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을 경험하게 된다.
“비록 내가 표면을 다루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내가 주목하고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내면에 깃들은 삶이다.” 론 뮤엑
전시장의 0층과 지하, 총 두 층에 걸쳐 7점의 작품만을 전관하지만, 전시의 규모와 작품이 주는 파장은 결코 미비하지 않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오프닝에 맞춰 제작된 두 점의 신작도 최초 공개된다. ‘혈관이 보일 듯한 피부 표현, 리얼한 신체 주름과 머리카락, 완벽한 신체 비율과 균형’ 론 뮤엑을극사실주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의 특징들이다. 실재보다 더 실제 같은 작품 묘사는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작업은 자칫 사실적 표현에만 치중되었다 보일 수 있지만, 단순히 실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적인 작품을 위한 ‘실제성’에는 이미 작가의 주관, 관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을 찍을 때의 조명, 타이밍, 배경 설정에는 이미 작가의 생각이 개입되게 된다.
론 뮤엑은 의도적으로 작품의 크기와 구조에 변화를 줌으로써 실재와 작품 간의 차별성을 둔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아이, 어른, 동물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은 실재와 구분되지 않는 리얼한 표현으로 익숙함을 줌과 동시에, 크기와 구조의 변주는 예기치 않은 낯섦과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낯익음과 낯설음의 간극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전시장 창문 너머로 수북이 쌓인 해골 작품 ‘Mass (2017)’가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이 작품은, 각 1.5미터 높이의 해골 조형 100개로 구성 되어 있으며, 총 무게는 5톤에 달한다. 천장까지 닿아 있는 해골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마치 새하얀 무덤 사이를 걷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강력한 시각 아이콘인 인간 두개골은 자연스레 개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의 설치와 구조는 더 넓은 죽음의 의미에 닿게 한다. 각기 다른 치아의 개수, 얼굴 형태의 디테일들은 이것이 개인의 집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제목이 군중, 더미, 종교 의식을 의미하듯, 테러, 전쟁, 인간의 가혹행위로 인한 집단 무덤을 연상케 한다.
지지대도 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쌓여 있는 두개골들은, 소멸과 동시에 무작위로 생성되었던 죽음의 개수의 가혹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작품 ‘Mass’의 맞은편엔, 한 여자아이가 누워있다. 탯줄과 혈흔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갓 태어난 여자아이는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 ‘A Girl (2006)’은 신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5m에 육박하는 작품 크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유발한다.
실감 나는 피부 표현은 자연스러운 분홍빛을 띠는 유리 섬유를 주 재료로 묘사되었다. 아이의 몸에 깊숙한 주름들은 오랜 시간 자궁에서 웅크려 있다 막 세상으로 나온 ‘탄생의 순간’을 암시한다. 하지만 어쩐지 큰 공간에 홀로 비스듬히 누운 아이는 외로워 보인다. 실제 신생아의 200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왜곡은, 낯선 세계에 던져져 감당해 나가야 할 삶의 무게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삶의 첫 순간을 알리는 ‘A Girl’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한 ‘Mass’는 아이러니하게도 좁은 통로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새하얀 지지대에 놓인 신생아와 바닥에 무작위로 던져진 해골의 대칭적인 설치는 탄생과 소멸을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두 작품 사이를 왕복할 수 있도록 개방된 전시 구조는, 삶의 순환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지하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검은 개의 무리와 눈이 마주친다.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Untitled’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육중한 크기에 압도되듯, 관객은 저절로 개의 다리 아래에 놓이게 된다. 바짝 응축된 근육과, 앞으로 쏠려 있는 무게 중심에서 상대를 향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최신작으로 공개된 이 세 마리의 개 조형은 경비견인지, 반려견인지 아니면 떠돌이 무리인지 알 수 없다. 돼지를 도살하는 남자들을 묘사하고 있는 또 다른 신작 ‘This Little Piggy (2023)’와 함께 대조를 해본다. 세 마리의 개는 돼지와 같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가? 무언가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편을 위협하고 있는가?.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관계는 다르게 확립된다. 론 뮤엑 작품의 섬세한 표정과 제스처, 정교한 형태들은 출생, 죽음, 시간, 존재, 나약함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한편, 비현실적인 스케일에서 오는 생소함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도록 이끈다.
그는 우리가 보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전복시키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그가 의도하는 세밀할 정도로 작고 무한히 큰 조각들은 단순히 작가의 표현적 테크닉이 아닌,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자 견해인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주는 낯선 감각에서 뜻하지 못한 삶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고,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을 경험하게 된다.
“비록 내가 표면을 다루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내가 주목하고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내면에 깃들은 삶이다.” 론 뮤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