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위험한 시집'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위험한 책'입니다."

이서하 시인(31·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옥에서 자신의 신간 시집 <조금 진전 있음>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존재들, 사고의 폭을 넓히지 않는 존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책은 시인이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이다.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펴낸 데뷔작 <진짜 같은 마음>에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듯 풀어놓았던 그다. 이번 시집에선 인생에서 마주치는 '위험한 일'들을 건조한 어조로 진술했다. 그는 위험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대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위험한 시집'
목차부터 '위험'이 도처에 도사린다. 수록작 59편의 제목은 전부 '가장 위험한…'으로 시작한다.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난 뒤 줄곧 이런 제목의 시들을 발표해왔다. 시작은 2020년 쓴 '가장 위험한 죽음'이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겪고 '상실'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실감했죠. 그러면서 세상의 온갖 위험한 것들로 시선을 넓히게 됐습니다."

시집은 "어쩌다 이런 곳엘"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맞이한다. 시인이 정리한 '위험한 일들의 목록'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이들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녹았다 언 아이스크림' '가방' '식물학자' 등 통상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 뿐이다. 독자들은 어느새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사로잡힌 위험한 상태가 된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위험한 시집'
수록된 작품들은 평소에 사람들이 관심을 건네지 않는 존재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가장 위험한 옛날 교회'는 사람들이 떠난 교회에 덩그러니 남은 의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교회에 놓인 의자들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문이 열고 닫힐 때 부딪히는 의자들의 불편함, 사람들이 옮겨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의자들의 불편함 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집은 온갖 사물들이 겪는 부조리함을 통해 독자한테 불편한 감정을 안긴다. 시집 중반부에 실린 '가장 위험한 되감기'는 대놓고 지직거리는 소음을 연상시키는 삽화를 실었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미세한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세상의 잡음을 의미한다"며 "이런 외면받는 목소리들을 소음으로 여기는 편협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서하 시인은 "불편함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진전"이라고 했다.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로 가득한 시집임에도 제목을 '조금 진전 있음'으로 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위험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겠죠. 불편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