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전 공급망은 프랑켄슈타인"…러시아가 조롱한 이유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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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 르네상스-上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미국 주도의 원자력발전 공급망 동맹은 '프랑켄슈타인'인 것인가."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이 지난 6월 발표한 뉴스레터의 한 문구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프랑스, 영국 5개국은 올해 4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주요7개국 원자력에너지포럼 회의를 계기로 원자력 분야에서 함께 러시아에 맞서기로 다짐했다.
이들은 원전 생태계 중에서도 '안정적인 핵연료 공급'에서 협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로사톰은 이 협력을 죽은 사람의 신체 조직들을 짜집기해 창조된 괴물 프랑켄슈타인에 빗댄 것이다. 이 같은 조롱의 배경에는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과 러시아의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
러시아는 핵연료 공급사슬의 모든 부분을 자국 내에서 조달한다. 탄탄한 공급망을 토대로 전 세계 농축우라늄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을 각각 20%, 30%가량 수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국들이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핵연료의 러시아 의존도가 너무 높아 언제든 러시아의 어깃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 원전 분야에 대한 제재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이유도 러시아 정권을 옥죄는 효과보다 자신들의 원전 산업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원전 공급망에 대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해외 고객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인도, 이집트, 튀르키예, 방글라데시 등에 원전을 건설해주고, 로사톰과 핵연료 장기 공급계약을 맺게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농축우라늄은 그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사업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원전의 진정한 가치는 외교 수단의 일환이라는 데 있다"며 "러시아가 원전 건설과 핵연료 공급을 패키지로 묶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반면 서방은 2010년대 들어 원전 생태계에 대해 사실상 두손을 놓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속도로 퍼진 탈(脫)원전 기조에 따라서다. 원전 생태계가 방치된 사이 미국은 우라늄 채굴과 육불화우라늄 전환 등의 공정을 대부분 이웃나라 캐나다에서 진행하게 됐다. 또 미국 내 농축시설은 유럽 국가들의 컨소시엄(유렌코)이 보유한 한곳(유니스 공장)이 유일해졌다.
미국 기업이 켄터키주 파두카에서 운영했던 마지막 상업용 농축공장은 2013년 문을 닫았다. 블룸버그통신은 "특히 우라늄정광을 육불화우라늄 가스로 전환하는 시설이 미국의 핵연료 공급사슬에서 가장 심각한 취약점"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전환 설비는 육불화우라늄 가격 폭락 등에 못이겨 2017년에 폐쇄됐다.
결국 전 세계 우라늄 전환 시장의 약 3분의2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미국 원전 업계의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육불화우라늄 가격은 10배가량 반등했고, 최근 미국 원전 기업 컨버다인은 과거 폐쇄된 일리노이주 전환 시설을 올해 안에 재개장할 계획을 밝혔다. 컨버다인 측 관계자는 "우리가 러시아산 공급물량을 대체할 만큼 설비를 증설하려면 고객사들과 장기계약을 맺는 등 '미국 원전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확신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미국 주도의 원자력발전 공급망 동맹은 '프랑켄슈타인'인 것인가."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이 지난 6월 발표한 뉴스레터의 한 문구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프랑스, 영국 5개국은 올해 4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주요7개국 원자력에너지포럼 회의를 계기로 원자력 분야에서 함께 러시아에 맞서기로 다짐했다.
이들은 원전 생태계 중에서도 '안정적인 핵연료 공급'에서 협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로사톰은 이 협력을 죽은 사람의 신체 조직들을 짜집기해 창조된 괴물 프랑켄슈타인에 빗댄 것이다. 이 같은 조롱의 배경에는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과 러시아의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
국내 원스톱 공급망 구축한 러시아의 자신감
핵연료는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연료로 사용되는 물질로, (저)농축우라늄을 의미한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통상 ▲매장지에서 우리늄 광석을 채굴 및 분쇄 ▲화학공정을 거쳐 천연 우라늄으로 불리는 우라늄정광(옐로우케이크·U3O8) 제조 ▲우라늄정광에 불소를 첨가해 농축에 적합한 육불화우라늄(UF6)으로 전환 ▲육불화우라늄 가스를 원심분리기에 주입해 돌린 뒤 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러시아는 핵연료 공급사슬의 모든 부분을 자국 내에서 조달한다. 탄탄한 공급망을 토대로 전 세계 농축우라늄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을 각각 20%, 30%가량 수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국들이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핵연료의 러시아 의존도가 너무 높아 언제든 러시아의 어깃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 원전 분야에 대한 제재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이유도 러시아 정권을 옥죄는 효과보다 자신들의 원전 산업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원전 공급망에 대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해외 고객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인도, 이집트, 튀르키예, 방글라데시 등에 원전을 건설해주고, 로사톰과 핵연료 장기 공급계약을 맺게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농축우라늄은 그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사업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원전의 진정한 가치는 외교 수단의 일환이라는 데 있다"며 "러시아가 원전 건설과 핵연료 공급을 패키지로 묶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곳저곳서 공급망 짜야 하는 미국
한번 건설된 원자로는 향후 수십 년 가동되는 동안 유지·보수 및 핵연료 공급 등의 추가 작업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러시아의 원전 외교력은 최근에도 국제 무대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영 전력사 에스콤이 오는 12월 만료되는 미국과의 원전 협정을 갱신하지 않고, 러시아와 핵연료 공동 생산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것이다.반면 서방은 2010년대 들어 원전 생태계에 대해 사실상 두손을 놓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속도로 퍼진 탈(脫)원전 기조에 따라서다. 원전 생태계가 방치된 사이 미국은 우라늄 채굴과 육불화우라늄 전환 등의 공정을 대부분 이웃나라 캐나다에서 진행하게 됐다. 또 미국 내 농축시설은 유럽 국가들의 컨소시엄(유렌코)이 보유한 한곳(유니스 공장)이 유일해졌다.
미국 기업이 켄터키주 파두카에서 운영했던 마지막 상업용 농축공장은 2013년 문을 닫았다. 블룸버그통신은 "특히 우라늄정광을 육불화우라늄 가스로 전환하는 시설이 미국의 핵연료 공급사슬에서 가장 심각한 취약점"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전환 설비는 육불화우라늄 가격 폭락 등에 못이겨 2017년에 폐쇄됐다.
결국 전 세계 우라늄 전환 시장의 약 3분의2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미국 원전 업계의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육불화우라늄 가격은 10배가량 반등했고, 최근 미국 원전 기업 컨버다인은 과거 폐쇄된 일리노이주 전환 시설을 올해 안에 재개장할 계획을 밝혔다. 컨버다인 측 관계자는 "우리가 러시아산 공급물량을 대체할 만큼 설비를 증설하려면 고객사들과 장기계약을 맺는 등 '미국 원전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확신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