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 자사주 소각에 인센티브 주려는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검토한 바 있다. 기업들은 일제히 반대했다. 한발 물러선 금융위. 의무화는 아니지만 ‘자사주 소각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고집스럽기도 하지. 지금처럼 기업이 ‘필요할 때 소각’하게 하면 되는데, 세금으로 인센티브는 왜 주나.

안동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은 “소각 의무화를 시행 중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주주 친화적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각 의무화는 캘리포니아주 정도나 시행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 다수의 주 회사법에서 자기주식 취득은 ‘(발행이) 수권 되었으나 미발행 주식으로 간주한다’(constitute authorized but unissued shares)는 문구를 채택하고 있다. 취득한 자사주 분량만큼 소각된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는 1984년 및 2016년 개정 모범사업회사법(MBCA)에 따른 표준 문구로, 네브래스카주에서 캘리포니아주, 하와이주까지 30개 이상의 주 회사법이 동일 또는 동일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캘리포니아주 정도가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법인 1969년 개정 MBCA를 따른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미주리, 오클라호마, 오하이오, 일리노이, 텍사스주 등은 취득한 자기주식을 소각할 수도 있고 보유·처분할 수도 있다고 정한다. 한국 일본 유럽 등도 그렇다.

그런데 미국법과 한국법의 결정적 차이는 ‘신주인수권’에 대한 태도다. 소수주주를 두껍게 보호하는 한국 상법은 모든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따른 비율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한다. 보유 주식 수의 비율에 따르지 않은 신주 배정, 즉 제3자 배정은 까다로운 제한이 있고, 이를 위반하면 이사가 소수주주들로부터 제소당하기 십상이다.

반면 미국은 어떤 주는 정관으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어떤 주는 정관으로 이를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뉴멕시코, 알래스카, 미네소타, 미주리 등의 주 회사법이 전자의 예고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메릴랜드, 미시간, 오클라호마, 오하이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의 주 회사법이 후자의 예다. 어떻든 신주인수권 부여 여부를 자치 법규인 정관에 정하도록 하고 있고, 그 부여가 법률상 의무는 아니다. 이들 주에서는 취득한 자사주를 즉각 소각하더라도 이사회 결의로 언제든 제3자 배정 신주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소각하든 않든 실질적 차이는 없다.

실제로 정관에서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상장회사는 거의 없다. 상장회사 주주는 시장에서 얼마든지 주식을 추가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공정하고 부당한 신주 발행과 자사주 처분은 이사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위반하기 때문에 이사들이 감히 손해배상 위험을 감수하려고 들지 않는다. 자사주 처분이 가능한 주에서도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기존 주주의 지분율에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미주리, 오클라호마, 오하이오, 텍사스 등의 주 회사법은 자사주 소각도 의무가 아니면서 주주에 대한 신주인수권 부여도 의무가 아니다. 그 배경은 정관 자치에 따른 ‘계약 자유’의 보호 및 기업 운영에서 ‘효율성의 극대화’(유연한 자본 조달)라는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는 꿈같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