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스고파라갈' 임성현 연출…국립극단 '창작공감' 통해 작품 제작
자본주의와 기후위기 관계 탐구한 작품…"무한히 확장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
관객이 즉석 한줄평 나누는 연극…"자기만의 의견 생각해보길"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줄 평을 들려주신 한분에게 티켓과 오만 원권 지폐를 교환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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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고파라갈'이 열리는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는 매일 밤 '한 줄 평 백일장'이 열린다.

관객들은 진지한 분위기로 배우들을 응원하거나,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생각이 담긴 저마다의 의견으로 5만원을 손에 넣는다.

색다르게 느껴지는 이 장면은 임성현 연출(33)의 아이디어다.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에서 '화폐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백일장으로 이어졌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국립극단 회의실서 만난 그는 "화폐를 주제로 한 강연에 참석했다가 강사가 오만 원권을 찢는 시늉을 하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개막할 때까지 관객들이 한 줄 평에 동참할 것인지 불확실했는데 매번 다른 의견이 나와서 재밌다"며 "진심으로 배우들을 응원하는 평이 기억에 남는다.

마냥 재밌는 시간이 되기보다는 관객들이 연극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즉석 한줄평 나누는 연극…"자기만의 의견 생각해보길"
2017년 연극 '예수 고추 실종 사건'으로 데뷔한 임 연출은 '툭'으로 2022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등 종교를 주제로 한 연극을 여러 차례 제작한 그는 국립극단의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을 계기로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다루게 됐다.

작품은 가상의 섬 스고파라갈에 상륙한 일곱 사람이 땅거북 지조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섬 이름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따왔고, 지조라는 이름은 핀타섬 땅거북 중 마지막 개체로 꼽혔고 2012년 죽은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를 변형했다.

임 연출은 '기후 위기와 예술'을 주제로 출연하는 배우 일곱 명과 1년간 교류하며 작품의 소재를 정했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역시 기후 위기와 관련한 글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임 연출은 "땅거북 조지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갈라파고스의 이야기를 접했다"며 "이곳이 기후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고 나니 관련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생태의 보고인 갈라파고스를 소재로 정하면서 주제는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아우르게 됐다.

작품은 땅거북을 착취하는 일에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돈을 번 사업가를 칭송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탐욕을 비판한다.

"인물들이 누군가 사업을 끝없이 확장해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결심하잖아요.

한 사람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스며들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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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즉석 한줄평 나누는 연극…"자기만의 의견 생각해보길"
임 연출은 작품을 본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각자의 의견을 생각하고 공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금의 공연 방식도 기후 위기에 관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다큐멘터리가 훨씬 효과적"이라며 "연극의 특성상 관객이 직접 공연장을 찾게 되니 사람들이 모였을 때 최대한 각자의 의견을 꺼낼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거추장스럽고 편하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의견을 생각할 수 있는 공연이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출의 입장으로 공연을 관람한 그의 한 줄 평은 무엇일까.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이 '만남의 예술'이라는 점을 느꼈어요.

작품은 결국 관객을 만나면서 완성된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제 한 줄 평은 '사람의 만남에는 힘이 있다'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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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즉석 한줄평 나누는 연극…"자기만의 의견 생각해보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