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곰 의미없는 행동 반복…사자는 누워 허공 응시
[르포] 유리벽 안에 갇힌 사자…부천 실내동물원 논란
"엄마, 저 호랑이는 왜 자꾸 빙빙 돌아요?"
지난달 30일 경기 부천시의 도심형 테마파크 내 실내동물원.
입구에서 10여분가량 걸어 정글존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반달곰 우리였다.

사육장 안에는 3∼4년생 반달곰 2마리가 있었다.

통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곰들은 관람객이 가까이 올 때마다 먹이주기 체험을 위해 뚫은 유리 벽 아래 구멍에 입을 갖다 대고 숨을 헐떡였다.

곰들은 구멍 안으로 먹이가 들어오자 먼저 이를 차지하려는 듯 포효하면서 앞발을 휘두르는 등 싸우기도 했다.

유리창 앞에 붙어 쉴 새 없이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거나 갸웃거리듯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도 관찰됐다.

관람객들은 '애교를 부린다'며 좋아했지만, 사실 이는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정형행동이다.



◇ 실내에 갇힌 맹수들…야생성 없이 무기력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백호랑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커다란 몸집의 호랑이를 코 앞에서 구경할 수 있어 사육장 앞을 지나던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와, 크다", "멋있다" 등의 탄성도 종종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탄성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유리 벽 앞에 딱 붙어 좌우로 배회하는 것 외에는 호랑이가 다른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아서다.

일부 나이가 어린 관람객은 "호랑이가 불쌍하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호랑이는 1시간여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백사자 사육장에 있는 2마리의 암사자와 수사자는 축 늘어진 상태로 꼼짝하지 않았다.

수사자는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잠을 자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암사자는 엎드린 상태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먹이를 밀어 넣어도 반응이 없었다.

이 밖에도 미국너구리 라쿤과 산미치광이로 불리는 호저 등 사육장에 있는 다른 동물들 역시 정형행동을 반복하거나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 "실내 사육은 비윤리적" 지적도
2018년 문을 연 이 실내동물원에는 1천600여평 규모의 사육 공간에 180여 종의 동물이 살고 있다.

곰과 호랑이, 사자 등 맹수들이 사는 사육장은 40∼50평 내외다.

야생동물의 활동량에 비해 좁은 편이라 실내에서 사육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삐쩍 마른 모습 때문에 '갈비 사자'로 불린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 '바람이'의 사례에서 보듯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여론도 높아지는 추세다.

관할 지자체인 부천시와 동물원에도 '동물들이 불쌍하다', '넓은 곳으로 옮겨달라'는 등의 민원이 수시로 쏟아진다.

부천시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관리 상황을 확인하고 민원이 들어올 경우 현장에 나가보는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더욱 잦아졌다"면서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있지만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서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동물단체들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동물 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2019년 이후 주기적으로 동물원의 사육 상황을 살피고 있다.



올해 초에도 활동가들이 방문했으나 먹이 체험이나 행동 풍부화(동물에게 야생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시설물의 부족 등 줄곧 문제점으로 꼽아온 부분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이 단체는 주장했다.

수의학 박사인 이혜원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복지연구소장은 이날 현장에서 동물들을 촬영한 동영상을 받아보고 "동물들에게서 전반적으로 정형행동이 관찰되며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동물들이 지내는 공간이 너무 좁고 운동량이 충족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게 문제"라며 "대형 맹수의 경우 실내에 갇혀 지내는 것이 매우 큰 스트레스인데 사람으로 치면 인터넷과 TV 등 즐길 거리가 아무것도 없는 방에 24시간 갇혀 사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실외 방사장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실내동물원은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동물원 "좋은 사육환경 늘 고민"…운영기준 강화 법률 시행
동물원 측은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일부에게서는 정형행동이 나타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동물원 관계자는 "갇혀 지내는 동물이 불쌍하다는 의견과 더 좋은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먹이 체험을 위해 밥을 굶긴다거나 사자 등 일부 동물이 뼈만 남을 정도로 말랐다는 일부 주장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먹이 체험으로 동물들이 먹는 육류나 과일은 간식거리도 안 될 정도로 소량"이라며 "관람객이 가까이서 동물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먹이와 함께 간식까지 정량보다 많은 양을 급여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동물들이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풍부화 시설 등도 강화하고 있다"며 "더 좋은 환경에서 살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 주어진 환경에서 동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사육사들도 늘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동물원 관계자는 "지난해 개정된 동물원 관련법이 오는 12월 시행되는데 새로 제시되는 관리 기준에 맞출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동물들을 기증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은 오는 12월 14일 시행된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동물원과 수족관 운영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동물별로 적합한 사육 기준이 시행규칙을 통해 정해질 전망이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동물원은 새로운 기준에 맞게 시설을 개선하기까지 5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이 밖에도 전문검사관제도를 도입해 사육 환경을 점검할 수 있게 했고, 체험 활동 등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