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美·佛 전투기 사들이는 인도네시아…KF-21, 뒤통수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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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당장 쓸 수 있는 전투기 필요하다”
8000억 ‘외상값’ 갚는 대신 다른 무기에 집중
한국도 투자 파트너 교체 등 ‘플랜B’ 고려할 때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2일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4.5세대 급 전투기 F-15EX 24대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F-15EX는 F-15 전투기의 최신 개량형이다.
당초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가 36대의 수출 승인을 해 줬지만, 실제 도입 목표 물량은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를 위해 중요한 F-15EX 전투기를 조달하는 약속을 하게 돼 기쁘다"며 "이 최첨단 전투기는 선진적 능력으로 나라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 공동개발 투자자다. KF-21개발과 관련해 한국에 약속한 분담금은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대신, 최근 몇 년간 다른 국가의 전투기는 대거 구입하고 있다.
지난 해 2월 프랑스와 81억 달러(약 10조8000억원) 규모의 라팔 전투기 42대를 사들이기로 했다. 또 올해 6월 카타르로부터 중고 프랑스산 미라주 2000-5 전투기 12대도 구매하기로 했다. 전투기 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F-15 기종 계약 직후인 지난 달 23일 미국 록히드마틴과 병력수송용 S-70M 블랙호크 헬기 24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헬기 개조와 시스템 업그레이드, 정비·보수 관련계약도 맺었다. 지난 달에는 튀르키예의 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3억 달러(약 4000억원) 상당의 신형 무인기(드론) 12대도 구입했다.
우리와 공동 개발 중인 KF-21 전투기에 대한 분담금은 연체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가 이같은 행보를 보이자 많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KF-21 사업과 관련 전체 개발비의 20%인 약 1조7000억원을 2026년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계약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이 완료되면 시제기 한 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현지 생산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2019년 1월까지 2272억원만 납부한 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4년 가까이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94억원, 417억원을 추가로 납부했지만, 원래 계획과 비교하면 8000억원 가량이 연체된 상태다. 인도네시아 측은 전체 분담금의 30% 수준인 약 5000억원을 현물로 납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사업 참여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인내심을 갖고 납부를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와 고위급 면담을 추진하는 등 인도네시아 측 의사를 확인한 후 대응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만간 엄동환 방사청장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관련 협의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본심'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어 우리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는 겉보기에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7월 자국 내에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한국 파트너에 대한 자금 조달 의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4세대 전투기인 F-15EX와 라팔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개발 단계인 KF-21보다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 전투기를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군사 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인도네시아는 현재 러시아제 전투기와 오래된 F-16 전투기를 운용 중인데 약 1만7000개 섬으로 이뤄진 넓은 국토를 방어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KF-21 개발을 기다리기 보다 미국과 프랑스산 전투기로 무장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정치 지형이 전투기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도네시아 독재자였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라보워 국방부 장관은 내년 대선 도전이 예상된다.
수출 실적이 필요한 한국과 제조사 한국우주항공산업(KAI)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다. 현지에선 전투기 구매 결정에 '대선 자금 확보가 관련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콤파스 등 현지 언론은 인도네시아가 중고 전투기를 카타르에서 들여온 것 관련해 "프라보워 장관이 프랑스 국적의 무기 거래상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매체들은 한국에 '강경 입장'을 주문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KF-21 사업에서 인도네시아를 뺄 경우 오히려 한국이 손해라는 주장이다. 인도네시아 매체 조나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가 KF-21 보라매를 운용하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나라들도 (KF-21의) 구매가 촉발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가 KF-21 사업에서 강제 퇴출될 경우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의 F-35를 구매할 것이고 동남아 시장에서 KF-21의 입지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초기 투자계약 체결시 위약금 등 페널티 조항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게 문제란 지적도 있다. 국내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현물로 납부하겠다는 등 계약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결국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며 "분담금을 연체해도 관련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있는 계약 조건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투자 파트너 교체 등 '플랜B'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란 관측이 나온다. KF-21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폴란드의 제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폴란드 방위산업 부문 국영기업인 PGZ그룹은 KAI에 KF-21 공동개발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앞으로 폴란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방산 협력을 요청한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8000억 ‘외상값’ 갚는 대신 다른 무기에 집중
한국도 투자 파트너 교체 등 ‘플랜B’ 고려할 때
인도네시아가 미국· 프랑스 등 국가로부터 전투기·헬기 등 무기를 사들이면서 한국의 차기 국산 전투기 사업인 KF-21 '보라매' 도입에 비상이 걸렸다. 인도네시아가 8000억원 대의 '외상값'을 갚는 대신 다른 무기사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당장 쓸 수 있는 전투기 도입을 원하는 인도네시아가 확실한 성능을 낼지 불분명한 KF-21에 대한 투자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현지에선 "한국과의 협상에서 인도네시아는 아쉬을 게 없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폴란드 등 KF-21 사업에 참여하길 원하는 다른 국가와의 계약 변경도 검토해봐야 할 시기란 관측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美 F-15EX 및 블랙호크 헬기 도입할 것"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2일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4.5세대 급 전투기 F-15EX 24대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F-15EX는 F-15 전투기의 최신 개량형이다.
당초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가 36대의 수출 승인을 해 줬지만, 실제 도입 목표 물량은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를 위해 중요한 F-15EX 전투기를 조달하는 약속을 하게 돼 기쁘다"며 "이 최첨단 전투기는 선진적 능력으로 나라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 공동개발 투자자다. KF-21개발과 관련해 한국에 약속한 분담금은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대신, 최근 몇 년간 다른 국가의 전투기는 대거 구입하고 있다.
지난 해 2월 프랑스와 81억 달러(약 10조8000억원) 규모의 라팔 전투기 42대를 사들이기로 했다. 또 올해 6월 카타르로부터 중고 프랑스산 미라주 2000-5 전투기 12대도 구매하기로 했다. 전투기 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F-15 기종 계약 직후인 지난 달 23일 미국 록히드마틴과 병력수송용 S-70M 블랙호크 헬기 24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헬기 개조와 시스템 업그레이드, 정비·보수 관련계약도 맺었다. 지난 달에는 튀르키예의 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3억 달러(약 4000억원) 상당의 신형 무인기(드론) 12대도 구입했다.
우리와 공동 개발 중인 KF-21 전투기에 대한 분담금은 연체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가 이같은 행보를 보이자 많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KF-21 사업과 관련 전체 개발비의 20%인 약 1조7000억원을 2026년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계약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이 완료되면 시제기 한 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현지 생산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2019년 1월까지 2272억원만 납부한 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4년 가까이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94억원, 417억원을 추가로 납부했지만, 원래 계획과 비교하면 8000억원 가량이 연체된 상태다. 인도네시아 측은 전체 분담금의 30% 수준인 약 5000억원을 현물로 납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사업 참여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인내심을 갖고 납부를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와 고위급 면담을 추진하는 등 인도네시아 측 의사를 확인한 후 대응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만간 엄동환 방사청장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관련 협의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본심'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어 우리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는 겉보기에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7월 자국 내에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한국 파트너에 대한 자금 조달 의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계약 미이행시 '위약금' 등 페널티 없어…"플랜B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4세대 전투기인 F-15EX와 라팔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개발 단계인 KF-21보다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 전투기를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군사 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인도네시아는 현재 러시아제 전투기와 오래된 F-16 전투기를 운용 중인데 약 1만7000개 섬으로 이뤄진 넓은 국토를 방어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KF-21 개발을 기다리기 보다 미국과 프랑스산 전투기로 무장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정치 지형이 전투기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도네시아 독재자였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라보워 국방부 장관은 내년 대선 도전이 예상된다.
수출 실적이 필요한 한국과 제조사 한국우주항공산업(KAI)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다. 현지에선 전투기 구매 결정에 '대선 자금 확보가 관련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콤파스 등 현지 언론은 인도네시아가 중고 전투기를 카타르에서 들여온 것 관련해 "프라보워 장관이 프랑스 국적의 무기 거래상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매체들은 한국에 '강경 입장'을 주문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KF-21 사업에서 인도네시아를 뺄 경우 오히려 한국이 손해라는 주장이다. 인도네시아 매체 조나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가 KF-21 보라매를 운용하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나라들도 (KF-21의) 구매가 촉발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가 KF-21 사업에서 강제 퇴출될 경우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의 F-35를 구매할 것이고 동남아 시장에서 KF-21의 입지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초기 투자계약 체결시 위약금 등 페널티 조항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게 문제란 지적도 있다. 국내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현물로 납부하겠다는 등 계약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결국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며 "분담금을 연체해도 관련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있는 계약 조건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투자 파트너 교체 등 '플랜B'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란 관측이 나온다. KF-21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폴란드의 제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폴란드 방위산업 부문 국영기업인 PGZ그룹은 KAI에 KF-21 공동개발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앞으로 폴란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방산 협력을 요청한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