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美·日 손 굳게 잡되 중국 등도 두드려라
친구 사이는 둘보다 셋일 때 더 안정적이다. 한 친구가 내게 삐지면 다른 친구가 중재에 나선다. 어려울 때면 두 친구가 협력해 나를 돕는다. 공동 위험에는 셋이 뭉쳐 싸운다. 대항력은 셋이 힘을 합칠 때 최대화된다. 1+1+1이 3이 아닌 6도 될 수 있다. 국가 사이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18일 출범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삼각연대 체제’의 핵심 작동 원리다.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하면 중국도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할 거다. 사드 사태 때처럼 무기력한 한국이 더 이상 아니다. 경제 분야 성과 가운데 ‘경제적 강압에 대한 공동 대응 및 극복 방안 마련’ 조항이 있다. 한국이 어려움에 처하면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맞서게 된다. 한국이 핵심 품목(광물·반도체·2차전지)을 확보하지 못할 때 한·미·일 공조 채널이 가동되는 점도 성과다.

‘한·미·일 재무장관회의’ 신설도 큼직한 결실이다. 우리나라 외환시장 안전망이 역대급으로 강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달러 부족으로 국가 부도 사태 직전까지 내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해도 대외부문 안전망은 이중·삼중 쌓아 나쁠 게 없다. 현재 미·일 간에 가동 중인 금융·외환 부문 협력은 한·미 간 관계보다 한 단계 위다.

미·일 간 체결된 ‘상설·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한 예다. 한·미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는 고작 6개월짜리 한시 자금이었다. 그나마 2021년 이후 종료 상태다. 동맹이 아닌 중국과도 통화스와프가 있는데 정작 혈맹인 미국과는 없다. 한·미 동맹 정신에 비춰 어색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과 맞먹는 수준의 협력관계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아닐까. ‘한·미·일 재무장관회의’에 기대를 갖는 이유다.

한·미·일이 똘똘 뭉치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경계와 질시의 대상이다. 당장 중국이 발끈한다. “중국은 강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하고 관련 당사자들에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 내용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운용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나친 갈등은 ‘공급망 삼각 연대’ 순항에 도움이 안 된다. 글로벌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전 세계 희토류 83%, 코발트 62%, 리튬 58%, 갈륨 94%, 게르마늄 83%, 흑연 67%를 중국이 지배한다. 반도체, 2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목줄을 쥔 모양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잇달아 방중해 중국과 대화에 공을 들이는 사연일 것이다. 특히 미 상무장관의 방중은 6년 만이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안정적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러몬도 상무장관 발언에 미국이 처한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미국은 겉으론 대(對)중국 디커플링(관계 단절)을 외친다. 최근에도 인공지능·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 등 3개 분야에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규제하는 강공을 이어간다. 하지만 드러난 현실은 충격적이다.

2017~2022년 미국은 중국에서의 수입을 14%포인트 줄였다. 대신 인도, 베트남, 대만, 멕시코 등 동맹국에서 수입을 늘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맹국 수입 중 51%가 중국 상품이었다. 같은 기간 미 동맹국과 중국 간 교역이 크게 늘었다. 영국 유력 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23년 8월 8일자) 기사다. 미국과 미 동맹국도 중국과의 공급망 연결을 단기간에 줄이기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한·미·일 삼국 중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제일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과의 협력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도 한국을 홀대할 수 없다. 최근 대(對)한국 유화 제스처가 부쩍 늘었다. 중국 크루즈 고객 약 700명이 제주에 왔다. 6년5개월 만이다. ‘한중 경제공동위원회’가 6년 만에 베이징에서 열렸다. 양국 간 공급망 안정 문제를 논의했다.

금융부문 협력 강화도 필수다. 한·중 통화스와프를 연장하는 한편 더 나아가 금융당국 간 ‘정보 공유 핫라인’을 새롭게 개설하면 어떨까. 미국 유럽 등 서방국은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global systemically important banks) 정리·파산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번 정상회의는 중국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국 이야기는 하긴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캠프 데이비드 기자회견 발언이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전략적 모호성(neither confirm nor deny). 한국이 중국에 취할 입장도 이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