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리의 논점과 관점] 러시아를 전쟁의 패자라 부르는 이유
지난해 3월 초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쟁이 발발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승패를 점친 것이다. 그는 “러시아는 공습 전보다 더 약하고 가난하게 남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복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침략은 돈이 됐다. 제국주의 시대는 물론 그 이전에도 그랬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해 돈을 벌었다. 스페인이 아즈텍과 잉카를 침략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대략 150년 전 이 명제는 무너져내렸다. 경제학자들이 ‘최초의 글로벌 경제’라고 부르는 철도, 증기선 등이 탄생한 1870년대쯤이다.

엇갈린 미·중 경제의 시사점

국제 금융 및 분업 체계가 촘촘히 짜여져 있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 침략에 나서는 국가들은 이 시스템에서의 탈락을 각오해야 한다. 현대 경제 구조에선 땅보다는 비즈니스 시스템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경제적 손실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평판 문제까지 더해지면 손실은 더 커진다. 1년 반 동안 이어진 지난한 전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 투자와 소비 급감, 루블화의 폭락 등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진 러시아의 경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크루그먼의 예측은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관점으로 중국 경제를 보자.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고 있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규범을 내던지고 시진핑 독재 체제를 구축하며 고립을 자초한 결과 경제 위기에 빠졌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최대 수혜국으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고성장을 이어왔음에도 제멋대로 보조금을 뿌리고 다른 나라의 기술을 베끼며 반칙을 일삼았다. 자유무역, 공정무역 가치를 훼손하고 기업들을 압박했다. ‘시진핑의 푸틴화’ 우려 속에서 외국 자본과 생산기지의 탈중국 행렬이 이어지며 중국 경제는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반면 미국 경제는 어떤가. 미국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이례적인 속도로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통화긴축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았다. 연착륙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채금리가 치솟은 것은 시장이 경기침체 베팅을 거둬들인 결과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GDP(국내총생산)나우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5.6%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다. 기축통화국이란 이점이 있긴 하지만 위기를 이겨낸 미국 경제 시스템은 같은 서구권인 독일 등 유럽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다. 현시점에서만 보면 미·중 패권 전쟁에서 미국이 완승을 거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미국 경제의 힘은 무엇보다 기업 경쟁력, 엔비디아 등 ‘매그니피센트7’ 기업들을 일군 혁신 생태계에서 나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 국가의 경쟁력은 군함 수가 아니라 세계적 기업의 숫자로 결정된다.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란 공통의 위기를 겪으며 각국 경쟁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주요국 성적표를 중간 집계한 결과를 보면 성장 정체에 빠진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해 보인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기업의 앞길을 터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