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34) 심리치료로 5·18 계엄군 끌어안은 홍선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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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장흥·춘천서 당시 계엄군들 만나 심리 검사로 증언 끌어내
5월의 기억 재소환…"역사의 증인으로 세상에 나왔으면"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
"심리치료로 마음을 가라앉힌 5·18 계엄군이 역사라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
홍선미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3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계엄군 증언 및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무고한 광주 시민을 진압했던 계엄군의 증언을 끌어내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심리치료 전문가로 참여한 홍 교수는 지난해 6월 허리 굽은 노인이 된 계엄군 13명을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계엄군들은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 등에 소속된 병사들이었다.
조사위의 초청으로 제주도에 도착한 이들은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일평생 '5·18의 죄인'으로 살아온 이들은 아직 세상 앞에 고개를 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홍 교수는 그런 이들 앞에 앉아 "당신들의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단지 당신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홍 교수는 경계심이 풀린 참가자들과 2박 3일간 함께 했다.
굳이 5·18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들이 겪는 우울함과 공격적 성향의 원인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홍 교수는 주로 다스(Draw-a-Story) 검사를 활용했다.
이는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는 미술 심리검사로, 그림에서 성향을 읽어내고 수검자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행복한 결혼생활 중 부인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화가 났다는 한 계엄군의 이야기를 잠재된 5·18의 트라우마로 연결 지으면서 자연스레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 도중 한 참가자는 잊히지 않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누군가 새벽녘 자기를 흔들어 깨우더니 가로, 세로 길이를 정해주고 특정 지역에 땅을 파라고 했는데 훗날 돌이켜보니 그곳이 5·18 희생자의 시신을 묻은 매장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43년이 흐른 지금까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삽질하며 쏟았던 지독한 땀 냄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광주에 투입된 다른 계엄군은 총탄에 맞아 쓰러져간 광주 시민군 사이에서 동네 형, 친척, 동생을 목격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홍 교수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했다"며 "명상, 숲 트래킹 등을 함께 하면서 이들의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급자의 명령으로 영문도 모른 채 광주에 투입돼 우리 현대사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하나같이 자책했다.
이 프로그램은 1차 제주도를 시작으로 2차 울산, 3차 춘천까지 이어졌고 전남 장흥에서 사후 관리 차원의 소모임도 열렸다.
홍 교수는 춘천에서 열렸던 3차 프로그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는 계엄군뿐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피해자 유족, 오월어머니회 등 5·18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홍 교수는 이날 "여기서 싸움 안 나면 나는 노벨상 받아야 한다"고 속으로 읊조렸다고 한다.
그는 심리 치료 20년 경력을 살려 침착하게 대응했다.
계엄군과 피해자 유족 등을 1:1 매칭하고 서로의 시력, 좋아하는 계절을 맞추거나 첫인상을 글로 적어 교환하는 심리 상담을 이어갔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를 상상해보는 프로그램도 넣었다.
어쩌면 너무 엉뚱하고도 생경한 이런 프로그램에 임한 이들은 부드럽게 풀리는 분위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한 유족은 "좋은 시간을 선물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홍 교수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 치료는 계엄군 여럿이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당시의 진상을 진술하고 사과하는,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홍 교수는 공을 인정받아 지난 5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홍 교수는 예산이 허락한다면 계엄군의 지속적인 심리 치료로 우리 아픈 현대사의 진실이 조속히 밝혀질 수 있길 바란다.
계엄군이 더는 스스로를 죄인이나 사회적으로 고립돼야 하는 인물로 대상화하지 않고 조각난 역사의 증인으로 남기를 원한다.
홍 교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실이 많고 실종자도 수두룩하다"며 "계엄군뿐 아니라 5·18에 관련된 모든 분의 심리 치료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 그날의 진상이 빨리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5월의 기억 재소환…"역사의 증인으로 세상에 나왔으면"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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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로 마음을 가라앉힌 5·18 계엄군이 역사라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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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3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계엄군 증언 및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무고한 광주 시민을 진압했던 계엄군의 증언을 끌어내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심리치료 전문가로 참여한 홍 교수는 지난해 6월 허리 굽은 노인이 된 계엄군 13명을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계엄군들은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 등에 소속된 병사들이었다.
조사위의 초청으로 제주도에 도착한 이들은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일평생 '5·18의 죄인'으로 살아온 이들은 아직 세상 앞에 고개를 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홍 교수는 그런 이들 앞에 앉아 "당신들의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단지 당신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홍 교수는 경계심이 풀린 참가자들과 2박 3일간 함께 했다.
굳이 5·18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들이 겪는 우울함과 공격적 성향의 원인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홍 교수는 주로 다스(Draw-a-Story) 검사를 활용했다.
이는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는 미술 심리검사로, 그림에서 성향을 읽어내고 수검자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행복한 결혼생활 중 부인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화가 났다는 한 계엄군의 이야기를 잠재된 5·18의 트라우마로 연결 지으면서 자연스레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 도중 한 참가자는 잊히지 않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누군가 새벽녘 자기를 흔들어 깨우더니 가로, 세로 길이를 정해주고 특정 지역에 땅을 파라고 했는데 훗날 돌이켜보니 그곳이 5·18 희생자의 시신을 묻은 매장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43년이 흐른 지금까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삽질하며 쏟았던 지독한 땀 냄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광주에 투입된 다른 계엄군은 총탄에 맞아 쓰러져간 광주 시민군 사이에서 동네 형, 친척, 동생을 목격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홍 교수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했다"며 "명상, 숲 트래킹 등을 함께 하면서 이들의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급자의 명령으로 영문도 모른 채 광주에 투입돼 우리 현대사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하나같이 자책했다.
이 프로그램은 1차 제주도를 시작으로 2차 울산, 3차 춘천까지 이어졌고 전남 장흥에서 사후 관리 차원의 소모임도 열렸다.
홍 교수는 춘천에서 열렸던 3차 프로그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는 계엄군뿐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피해자 유족, 오월어머니회 등 5·18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홍 교수는 이날 "여기서 싸움 안 나면 나는 노벨상 받아야 한다"고 속으로 읊조렸다고 한다.
그는 심리 치료 20년 경력을 살려 침착하게 대응했다.
계엄군과 피해자 유족 등을 1:1 매칭하고 서로의 시력, 좋아하는 계절을 맞추거나 첫인상을 글로 적어 교환하는 심리 상담을 이어갔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를 상상해보는 프로그램도 넣었다.
어쩌면 너무 엉뚱하고도 생경한 이런 프로그램에 임한 이들은 부드럽게 풀리는 분위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한 유족은 "좋은 시간을 선물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홍 교수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 치료는 계엄군 여럿이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당시의 진상을 진술하고 사과하는,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홍 교수는 공을 인정받아 지난 5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홍 교수는 예산이 허락한다면 계엄군의 지속적인 심리 치료로 우리 아픈 현대사의 진실이 조속히 밝혀질 수 있길 바란다.
계엄군이 더는 스스로를 죄인이나 사회적으로 고립돼야 하는 인물로 대상화하지 않고 조각난 역사의 증인으로 남기를 원한다.
홍 교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실이 많고 실종자도 수두룩하다"며 "계엄군뿐 아니라 5·18에 관련된 모든 분의 심리 치료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 그날의 진상이 빨리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