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에 묶인 예금자보호한도 높인다는데…은행주가 떨고있다
여야 의원 12명,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법안 발의
은행업계 보험료율 오르고 대규모 예금 이탈 우려
입법조사처도 수혜대상, 전체 예금자 1~2% 불과
상향해야 vs 신중해야 … 다음달부터 본격 논의

은행 등 금융회사가 파산하더라도 금융소비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인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늘었지만, 현행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이후 22년 가까이 그대로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은행업계에선 반론이 제기된다. 예금자보호한도가 늘어나면 은행들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율 역시 늘어나고, 이는 예금이자 하락 등 금융소비자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추가되는 비용에 비해 보호한도 증가에 따른 수혜를 입을 소비자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악재예상기업= 비용 증가, 이익 감소: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기업은행 하나금융지주 KB금융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제주은행
호재예상기업= 비용 증가, 이익 증가: 카카오뱅크 상상인
발의:조경태·홍석준·박성준·신영대·주호영·김한규·양기대·김병욱(더불어민주당)·이성만·서영교·강병원 의원
어떤 법안이길래
- 금융회사가 파산 등의 사유로 예금 등을 지급할 수 없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의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인상
- 중대한 금융 경제상의 위기 등 예금자를 보호할 긴박할 필요가 있을 때는 예금보험위원회 의결을 통해 한도를 일시적으로 추가 상향할 수 있음
어떤 영향주나
- 시중 은행 대비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 등으로 대규모 자금 이동 예상.
- 은행들이 예금보험공사에 지급하는 예금보험료율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

21대 국회 중 발의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가운데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11개에 달한다. 대부분 5000만원으로 규정되어있는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주로 대표발의를 했지만, 조경태·홍석준·주호영 등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도 각자 법안을 냈다.

국내 은행의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이후 23년째 5000만원으로 고정되어있다. 미국(25만달러·약 3억원)과 유럽연합(10만유로·약 1억4000만원), 일본(1000만엔·약 9000만원) 등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는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개발연구원(KDI)는 2016년 예금보험공사 요청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2001년 이후 모든 보호대상 예금에 대해 일률적으로 5000만원 한도를 보장하는 현행 제도가 국내 금융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고, 각 금융업종과 상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DI는 은행과 보험 업종의 한도를 1억원으로 늘리되, 저축은행과 금융투자업의 한도는 현행 5000만원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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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법안은 추가적으로 우리 경제가 중대한 금융 위기 등을 맞아 예금자를 보호할 긴박한 필요가 있을 때 예금보험위원회가 한도를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예금자들이 일제히 은행 등에 맡긴 예금을 회수하며 혼란이 빚어지는 '뱅크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IMF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7년 11월부터 1998년 7월 사이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장한 바 있다.

여야 “보호한도 5000만원, 선진국 평균 밑돌아”

은행업계와 증권가에선 예금보호한도 인상이 은행사들의 이익 감소로 이어질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이율 감소 및 고위험 금융서비스로의 자금 이동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대로 시중 은행보다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저축은행과 인터넷은행 업계에선 내심 업권별로 동일한 수준의 한도 상향이 이뤄진다면 상당한 수준의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예금자보호한도가 늘어난다면 은행들은 1차적으로 예금보험기금에 지급하는 예금보험료율도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행법상 금융사는 업권에 따라 각기 다른 보험료율을 적용받는다. 은행의 경우는 0.08%, 금융투자업자·보험회사·종합금융회사는 0.15%, 저축은행은 0.4%다. 지난해 예금보험기금이 각 금융사로부터 거둬들인 예금보험료 수입액은 2조2089억원에 달한다.

은행과 보험, 저축은행, 증권사 등 업종에 상관없이 동일한 한도를 적용할 경우 은행권 예금의 대규모 이탈도 우려된다. 낮은 이율에도 저축은행이 아닌 은행에 예금을 맡기는 소비자들 입장에선 저축은행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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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연구용역 결과,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국내 5대 저축은행(SBI저축은행·OK저축은행·한국투자저축은행·페퍼저축은행·웰컴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규모는 총 38조9456억원으로 집계된다.

입법조사처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조사처는 지난달 발표한 ‘2023년 국정감사 이슈 보고서’를 통해 “예금자보험한도 상향으로 편익은 금융자산이 많은 일부 상위계층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추가 혜택을 받는 예금자는 금융권별로 약 1~2% 내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10월 중 국회에 보고 예정

금융위는 오는 10월 국회 정무위원에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관련 연규용역 조사를 보고를 자체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안이 제출되면 여야는 본격적으로 법안 개정 논의를 시작할 전망이다.

한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보호한도 인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총선을 앞두고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여야 모두 있을 것"이라며 "다만 법안 대부분을 내놓은 민주당 내부에도 반대 의견이 적지않아 심의가 순식간에 이뤄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무위 내부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사로는 이용우 민주당 의원이 있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토론회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게 되면 금융회사들은 곧바로 금융소비자들에게 이 비용을 전가시킬 것”이라며 “예금자 보호한도를 무조건 올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전부터 업권에 상관없는 대규모 한도 상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상향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와 금융위의 신중론이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보호 한도 상향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우리나라의 보호한도는 1인당 국민총소득(GDP)의 1.2배 수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가 권고하는 1인당 GDP의 1~2배 범위 이내에 해당한다"며 "현 시점에서 보호한도를 조정하기보단 향후 예금보호제도의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유보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