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과도한 긴축(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금조달 비용 상승과 건축 자재값 상승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독일 정부가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새 건물에 에너지 효율성 기준을 대폭 강화한 게 신규 개발 수요 둔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모리츠 슐라릭 소장은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독일은 10~15년에 걸친 부동산 호황의 끝자락에 있다"며 "이제 부동산 금융 사이클은 날마다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파산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독일 부동산 개발사들은 금리 상승과 건축 자재 가격 상승, 노동력 부족, 신규 개발 수요 둔화 등 잇단 악재로 인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슐라릭 소장은 "기존의 자금조달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뒤셀도르프에 본사를 둔 게르히와 센트룸그룹 개발파트너, 뮌헨의 유로보덴, 뉘른베르크의 프로젝트이모빌리엔 그룹 등 지난 몇 주 사이에만 독일의 여러 개발업체가 파산 신청을 했다. 보노비아, 어라운드타운 등 대형 임대업체들은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취임 당시 연간 40만 채의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하지만 독일 주택 공급량은 작년에 총 29만5300채에 그쳤고, 올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건설 허가를 받은 아파트 공급량은 작년 동기 대비 27% 줄어든 13만5200 채에 불과했다.

독일 싱크탱크 Ifo연구소에 따르면 7월 설문조사에서 건설사의 40.3%가 수주 부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18.9%는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고 답했고, 10.5%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클레멘스 푸에스트 Ifo 소장은 "금리가 너무 빨리 상승하면서 많은 프로젝트가 수익성이 없어졌고, 주거용 주택에 대한 수요는 붕괴됐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주 베를린 외곽의 영빈관 슐로스메세베르크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정부 워크숍에서 연간 70억유로 규모의 법인세 감면 패키지를 통과시키면서 부동산 부문에 대한 대책도 내놨다. 독일 건설업체의 투자 비용에 관한 감가상각 규칙 완화 등이 포함됐다. 클라라 게이비츠 건축부 장관은 "이번 조치를 통해 독일의 주택 건설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부동산주택회사협회인 BFW의 더크 살레브스키 대표는 "이 규칙 개정은 바다에 물방울 하나 떨어트린 꼴"이라고 비판했다. 독일 건설산업중앙연맹인 HDB의 팀 올리버 뮐러도 "유동성 부족이라는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며 "주택 구매자를 위한 저금리 대출 확대, 신축 건물에 적용되는 엄격한 에너지 효율성 기준 완화, 공공 소유 주택 조합에 대한 투자 허용 등을 통해 중단된 건설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슐라릭 소장은 "정부가 독일의 취약한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될 대규모 주택 건설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개발업체는 향후 몇 년 동안 주택 건설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이 주택 건설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