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 시티의 나비효과…매파 선회 강요 당한 중앙은행들 [조재길의 마켓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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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급등한 국제 유가…배럴당 85달러
미국과 대립각 세운 사우디·러시아가 주도
글로벌 물가 재상승 속 긴축 카드 만지작
미국과 대립각 세운 사우디·러시아가 주도
글로벌 물가 재상승 속 긴축 카드 만지작
국제 유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느덧 배럴당 85달러를 훌쩍 넘었습니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지난 1일 배럴당 85.55달러, 유럽산 브렌트유 가격은 88.4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지난주 움직임을 보면 WTI는 7.2%, 브렌트유는 4.8% 각각 뛰었습니다.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1월 27일, 작년 11월 16일 이후 최고치입니다.
모든 가격 변화가 그렇습니다만 유가 역시 수급이 결정적 원인입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가 지난 수 개월간 유가 약세를 이끌었는데, 당국이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며 분위기가 조금 반전됐습니다. 동시에 최대 원유 소비국인 미국에선 ‘예상보다 강한 경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공급 사이드입니다. 세계 1,2위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인위적으로 공급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이권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산유국 협의체를 통해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를 띄우기 위해 매일 100만 배럴씩 감산해왔는데, 4분기에도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부총리도 지난달 말 “원유 감산에 대해 OPEC 플러스 회원국들과 이미 합의했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글로벌 시장에 ‘공급 충격’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OPEC 플러스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주도한 데 이어 올 4월 166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이끌었습니다. 7월부터는 독자적인 100만 배럴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배경에 ‘비전 2030 프로젝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철권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이죠. 미래 도시인 네옴 시티를 짓는 게 핵심 중 하나인데, 문제는 막대한 소요 자금입니다. 총 5000억달러의 건설 자금을 충당하려면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하는 국제 유가는 배럴당 최소 80~1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더 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이터가 원유 전문가 37명을 대상으로 정기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의 평균 유가 전망’이 4개월 만에 상승 반전했습니다. 7월 전망치 평균이 81.95달러였는데, 8월엔 82.45달러로 높아졌습니다.(현재까지의 평균 가격은 80.6달러) 유가가 하반기 내내 배럴당 최소 80달러를 웃돌 것이란 게 컨센서스입니다.
프라이스 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수요가 역대 최고에 근접한 상황에서 공급은 평균치 이하란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맷 셔우드는 “연말까지 원유 시장에서 상당한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호주의 커먼웰스 은행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한달만 더 연장해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은 각국 경제의 경기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선회 시점을 늦출 것으로 보입니다.
래피얼 보스틱 미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가 “현재 기준금리가 충분히 높다”면서도 “조만간 통화 완화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가가 금방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는 해석입니다. 앞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총재 역시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요.
7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3.3%(작년 동기 대비)로, 전달의 3.0%보다 되레 상승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중앙은행(BOE)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또 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가 급등 탓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통계청이 5일 ‘8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할 예정인데, 시장에선 인플레이션 재상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7월 2.3%까지 둔화했던 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으로 치솟으며 7개월 만에 상승세로 방향을 틀 것이란 전망입니다. 올해 5월(3.3%) 이후 또 다시 3%대에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4위 원유 수입국이란 점에서, 유가 급등의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연 3.5%로 다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게 됐습니다. 유가가 안정을 되찾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지난 1일 배럴당 85.55달러, 유럽산 브렌트유 가격은 88.4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지난주 움직임을 보면 WTI는 7.2%, 브렌트유는 4.8% 각각 뛰었습니다.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1월 27일, 작년 11월 16일 이후 최고치입니다.
모든 가격 변화가 그렇습니다만 유가 역시 수급이 결정적 원인입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가 지난 수 개월간 유가 약세를 이끌었는데, 당국이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며 분위기가 조금 반전됐습니다. 동시에 최대 원유 소비국인 미국에선 ‘예상보다 강한 경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공급 사이드입니다. 세계 1,2위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인위적으로 공급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이권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산유국 협의체를 통해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를 띄우기 위해 매일 100만 배럴씩 감산해왔는데, 4분기에도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부총리도 지난달 말 “원유 감산에 대해 OPEC 플러스 회원국들과 이미 합의했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글로벌 시장에 ‘공급 충격’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OPEC 플러스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주도한 데 이어 올 4월 166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이끌었습니다. 7월부터는 독자적인 100만 배럴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배경에 ‘비전 2030 프로젝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철권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이죠. 미래 도시인 네옴 시티를 짓는 게 핵심 중 하나인데, 문제는 막대한 소요 자금입니다. 총 5000억달러의 건설 자금을 충당하려면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하는 국제 유가는 배럴당 최소 80~1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더 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이터가 원유 전문가 37명을 대상으로 정기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의 평균 유가 전망’이 4개월 만에 상승 반전했습니다. 7월 전망치 평균이 81.95달러였는데, 8월엔 82.45달러로 높아졌습니다.(현재까지의 평균 가격은 80.6달러) 유가가 하반기 내내 배럴당 최소 80달러를 웃돌 것이란 게 컨센서스입니다.
프라이스 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수요가 역대 최고에 근접한 상황에서 공급은 평균치 이하란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맷 셔우드는 “연말까지 원유 시장에서 상당한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호주의 커먼웰스 은행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한달만 더 연장해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은 각국 경제의 경기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선회 시점을 늦출 것으로 보입니다.
래피얼 보스틱 미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가 “현재 기준금리가 충분히 높다”면서도 “조만간 통화 완화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가가 금방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는 해석입니다. 앞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총재 역시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요.
7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3.3%(작년 동기 대비)로, 전달의 3.0%보다 되레 상승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중앙은행(BOE)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또 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가 급등 탓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통계청이 5일 ‘8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할 예정인데, 시장에선 인플레이션 재상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7월 2.3%까지 둔화했던 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으로 치솟으며 7개월 만에 상승세로 방향을 틀 것이란 전망입니다. 올해 5월(3.3%) 이후 또 다시 3%대에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4위 원유 수입국이란 점에서, 유가 급등의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연 3.5%로 다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게 됐습니다. 유가가 안정을 되찾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