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월트디즈니의 밥 아이거, 힐튼월드와이드의 크리스토퍼 나세타…’.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는 미국 대기업의 유명 최고경영자(CEO)인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한 회사에서 CEO로만 10년 넘게 일한 경영자다.

미국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회사를 이끈 ‘장수 CEO’가 10년 전보다 세 배가량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기업은 단기간 실적을 높이기 위해 당대 가장 뛰어난 전문 경영자를 임명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엔 오너(사주) 경영인뿐 아니라 전문 경영인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장기 재임하는 추세다.
장수 CEO 전성시대…美 대기업 5곳 중 1곳 '10년 이상 재임'

S&P500 CEO 중 101명이 ‘10년 이상’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조사업체 마이로그IQ의 자료를 인용해 S&P500 기업의 CEO 중 101명이 지난해 기준 10년 이상 CEO로 재임하고 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대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이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장수 CEO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10년 전만 해도 S&P500 기업에서 10년 이상 재임한 CEO는 36명에 불과했는데, 그 숫자가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S&P500 기업의 CEO 평균 임기는 같은 기간 6년에서 7년으로 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오랫동안 재임하고 있는 CEO가 대부분 기업 오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S&P500 기업 가운데 벅셔해서웨이의 오너 경영인인 버핏은 53년 동안 회사를 이끌며 최장기 CEO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JP모간의 다이먼, 어도비의 샨터누 너라연, 힐튼월드와이드의 나세타 등은 모두 전문 경영인이다.

장기간 회사를 이끌다가 퇴임한 뒤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 CEO’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1987~2000년, 2008~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스타벅스 CEO직을 수행했다가 지난해 4월 세 번째 CEO로 복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슐츠는 임시 CEO로서 1년간 회사를 이끌었으며 올해 3월 퇴임했다. 아이거는 2005년부터 15년간 월트디즈니 CEO를 맡았다가 2021년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지만,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전격 복귀했다.

장수 CEO는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장기적인 안목까지 갖추고 있다. 기업 오너나 이사회로선 이처럼 경영 성과가 좋은 CEO를 굳이 교체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은퇴 연령이 높아지면서 베테랑 CEO들이 오랫동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적기에 후임자를 찾지 못해 불가피하게 장수 CEO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EO 성과 재임 15년부터 둔화

이코노미스트는 장수 CEO엔 리스크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미국 보스턴대 연구진이 미국 상장사의 시가총액과 CEO 재직기간 간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기업의 시가총액은 CEO 취임 후 10년간 꾸준히 늘었다. 이후 10~15년간 정체되다가 15년 뒤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앞서 1991년 컬럼비아경영대학원에서도 장기간 CEO를 맡으면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업무 몰입도가 낮아져 기업 성과가 저하된다는 연구 논문이 나왔다. 빌 조지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오랜 기간 CEO를 맡으면 결국 활력과 창의력을 잃게 된다”며 “그런 활력은 기업에 혁신이 필요할 때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이상적인 승계 계획은 CEO가 취임하는 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차세대 경영인이 기업의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회사인 KPMG의 클로디아 앨런 컨설턴트는 “CEO 후보진을 구축하고, 그들의 능력을 평가해 차례차례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업무 분배와 견제를 위해 CEO와 이사회 의장 간 역할을 분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