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란버스 사태' 수백억 소송전으로 번졌다
#1. 서울 강일동에 있는 S버스업체는 이달 들어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운송 계약 332건 중 119건이 파기됐다. 이로 인해 줄어든 수익은 4억3000만원에 달한다. 회사 관계자는 “가을에 추가 계약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계약 줄파기를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 경기 용인의 S초교는 한 버스업체로부터 “체험학습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으니 학교장이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이 학교 교사는 “교육청에 문의하니 ‘학교는 나설 필요가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은 알려주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초교 체험학습 이동 수단을 이른바 ‘노란버스’(어린이통학버스)만 이용하게 한 정부 지침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이 지침을 무기한 유예했지만 추후 책임 소재를 우려한 학교들이 대거 계약을 해지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2학기 체험학습이 ‘완전 중단’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갑작스러운 계약 파기로 큰 손실을 보게 된 버스업계는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계약 취소 전세버스 수만 대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오는 8일까지 연합회 소속 1617개 업체(차량 3만9409대)의 2학기 체험학습 계약 취소 현황을 파악한 뒤 이를 바탕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법무법인 해송에 법리 검토를 맡긴 상태다. 이날까지 연합회가 취합한 계약 취소 금액은 149억8100만원, 취소 건수는 844건에 달했다. 소송 대상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버스업계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지침 변경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한다. 계약 파기는 2학기 개학을 앞두고 교육부가 일선에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13세 미만 어린이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가려면 일반 전세버스가 아니라 어린이 통학용으로 신고된 일명 노란버스를 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주체는 경찰청”이라며 “경찰청이 만든 공문을 일선에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노란버스가 부족해 체험학습을 아예 취소해야 한다는 학교들의 지적이 나오자 단속을 유예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 “불법이어서 사고라도 나면 민사소송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체험학습을 줄줄이 취소하고 운송 계약도 파기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피해 집계 액수가 하루에 수십억원씩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새로운 일감을 찾을 수도 없어 위약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책임 논란에 체험학습 줄취소

내년에도 노란버스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연합회는 정부 요구를 충족하는 노란버스로 개조하기 위해선 대당 400만~500만원이 든다고 주장한다. 어린이 통학버스는 차량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어린이 하차 확인장치와 어린이의 신체 구조에 맞는 안전띠를 설치해야 한다. 연합회 관계자는 “새벽엔 회사 통근 등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데 노란색으로 칠하긴 어렵다”며 “버스업계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노란버스 의무화 조치에 교사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버스업체들이 학교를 상대로 계약 파기 위약금을 받겠다며 별도 법적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교육청들은 대규모 계약 파기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용인 S초교 행정실장은 “체험학습을 기획한 담임교사가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노란버스 단속 무기한 유예조치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경찰이 단속을 유예해 과태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등 돌발 변수가 생기면 교사가 책임져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전세버스로 체험학습을 가다가 사고가 나서 학부모가 민사소송 등을 걸면 담임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며 “불안감에 소풍을 취소하고 외부 강연 등으로 대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철오/안정훈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