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신약후보 중 항암제 단 두 개…다양성 확대될 것"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대성공으로 항암제 시장에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앞으로의 제약·바이오 시장은 다양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항암제에만 치중되기보다는 조현병·알츠하이머병, 희귀질환 치료제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는 연례보고서를 통해 현재 가장 높은 잠재력을 가진 신약 파이프라인(치료후보물질)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파이프라인 중 항암제는 단 두 개다. 항암제 시장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2028년 항암제 시장 규모가 3460억 달러(약 46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의외의 결과다.

"키트루다 다음은 없다."

이번 보고서에 대한 이밸류에이트 대변인의 설명이다. 이밸류에이트 분석가들은 항암제 후보물질이 속속 상용화되는 현재 시점에서 앞으로는 폭발적인 성장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는 차세대 항암제 기술로 주목받던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알츠하이머병·희귀질환 등 뉴페이스 등장


보고서는 미래에는 바이오·제약 시장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10대 파이프라인에 알츠하이머병이나 조현병 같은 질환 치료제가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심장 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등 대사질환 치료제도 다수 이름을 올렸다.

이밸류에이트가 선정한 가장 잠재 가치가 높은 신약후보는 머크(MSD)의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소타터셉트다. 현재 가치는 116억 달러(약 15조5000억 원)로 평가됐으며 2028년까지 26억 달러(약 3조5000억 원)의 제품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전립선암·폐암 등 적응증 확대에 여섯 번이나 실패하면서 난관에 봉착한 머크는 2021년 115억 달러 규모로 인수했던 액셀러론 파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폐동맥 고혈압을 치료하는 소타터셉트는 지난 3월 발표된 임상 3상에서 임상적 악화 또는 사망 위험을 84% 줄이는 것이 증명됐다. 폐동맥 고혈압은 5년간 생존률이 54% 수준(2008~2016년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머크는 내년 초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목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다이치 산쿄와 아스트로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다토포타맙 데룩테칸은 2위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가치는 115억 달러(약 15조 3000억 원)로 202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6억 달러(약 3조5000억 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7월 초 발표됐던 다토포타맙 데룩테칸의 임상 3상 데이터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기존 치료제 대비 환자의 무진행 생존기간(PFS·환자가 암의 진행이나 병력의 악화 없이 생존하는 기간)은 개선됐지만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간질성 폐 질환이 부작용으로 관찰돼 안전성 이슈가 불거졌었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13㎏를 감량한 비결로 지목한 카그리세마(제품명 위고비)가 현재 가치 103억 달러(약 13조7000억 원), 2028년까지 기대되는 제품 수익은 19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로 뒤를 이었다. 카그리세마는 원래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인데 이 약의 성분인 세마클루타이드가 식욕억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만치료제로도 활용되고 있다. 카그리세마는 지난 68주간 진행된 임상 시험에서 평균 15%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이 나타나 2021년 6월 FDA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알츠하이머병이나 새로운 기전의 조현병 치료제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일라리 릴리가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도나네맙은 현재 가치 88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로 2028년까지 제품 판매로 21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8월 임상 3상에 성공한 조현증 신약 후보 카엑스티(KarXT)는 현재 84억 달러(약 11조2000억 원)의 가치로 2028년까지 28억 달러(약 3조7000억 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부상한 모더나의 새로운 RNA 백신인 mRNA-1647는 현재 가치 62억 달러(약 8조3000억 원)에 2028년 제품 판매로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의 수익이 기대된다. 임신부의 유산·사산을 유발하고 태아가 감염되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거대세포바이러스(CMV)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다.

희귀질환인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제 입타코판은 지난해 12월 임상 3상 결과에서 효능을 입증하며 현재 가치 62억 달러(약 8조2000억 원)로 평가됐다. 2028년까지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대형 제약사에서도 수없는 실패만 이어졌던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레스메티롬은 지난 7월 FDA 승인 신청을 완료하며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재 가치 60억 달러로 평가되는 레스메티롬은 2028년까지 22억 달러의 수익을 낼 전망이다.

현재 가치 44억 달러(약 5조9000억 원)로 평가되는 폐쇄성 비대성 심근병증 치료제인 아피캄텐은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아직 출시 계획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음에도 이밸류에이트는 이 물질이 2028년까지 17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아피캄텐을 개발한 사이토다이내믹스는 올해 3월 심부전 치료제 후보였던 오메캄티브 메카빌이 FDA 승인을 거절당했다. FDA는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추가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사이토다이내믹스는 추가 임상시험 대신 아피캄텐의 시장 진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도치 않게 최근 다시 주목받는 로슈의 면역항암제 티라골루맙은 현재 가치 48억 달러(약 6조4000억 원)로 2028년까지 제품 수익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낼 것으로 예상되며 10대 파이프라인에 선정됐다. 지난해 티라골루맙은 폐암 임상 유효성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며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올해 8월 생존 연장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낸 임상 3상 중간데이터가 실수로 공개되며 다시 성공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10대 파이프라인 2028년까지 예상 수익 '26조 원'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선정된 10대 파이프라인의 현재 가치는 791억 달러(약 106조 원)로 이들은 202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94억 달러(약 26조 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평가된다.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만큼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신약개발에 드는 비용도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발표한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약사들은 지난해 신약개발에 예년보다 2억9800만 달러(약 3974억 원) 늘어난 22억 달러(약 2조9000억 원)을 지출했다. 반면 파이프라인당 최대 매출은 2021년 5억 달러(약 6667억 원)에서 3억8900만 달러(약 5187억 원)로 줄었다. 신약개발에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약회사들은 도박에 뛰어들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9월 6일 15시 08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