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틀 깨고 경계 없애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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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비극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와 싸우는 이념 전쟁 말고
AI 혁명 시대 철학 고민해야
시스템 해체도 각오해야 할 판에
정부 리더십·책임감 어디 갔나
개인·기업 먼저 행동할 수밖에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과거와 싸우는 이념 전쟁 말고
AI 혁명 시대 철학 고민해야
시스템 해체도 각오해야 할 판에
정부 리더십·책임감 어디 갔나
개인·기업 먼저 행동할 수밖에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그들은 조짐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하는 데 뛰어나다.” 샐리 셰이위츠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자가 실어증 환자를 관찰한 결과다. 야마구치 슈 일본 경영컨설턴트는 패턴 인식이 갖는 한계에 주목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편리하기 짝이 없지만 변화를 인지하고 일으키는 데는 족쇄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두 번 다시 비극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 슈는 철학적 사고 과정을 학습할 것을 주문한다. 시대의 지배적 사고방식이나 관념을 의심하는 ‘지적반역(知的反逆)’이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초래되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와 정부가 과거와 싸우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 논쟁이 아니라 난데없는 이념 전쟁이 그렇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전체주의를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이 정당화되면 그 또한 전체주의와 한통속이 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갈라치기를 하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또한 전체주의란 점에선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전체주의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에서 나오는 혁신이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갖은 역풍을 헤쳐나온 자본주의가 미래로 가는 인공지능(AI) 혁명의 변곡점에 선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거역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다. 미·중 충돌 같은 변수는 이런 거대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2023년 AI 하이퍼 사이클을 내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운데이션 거대 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가 ‘기대의 최정점’에 올라선 모습이다. 묻지마 열기가 곧 식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지만, 게임체인지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기대와 현실의 조정 단계로 진입하면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갈릴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생성형 AI 기술 자체의 혁신과 생성형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혁신, 두 경로에서 벌어질 치열한 진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게임체인지는 발명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기술적 진화와 상용화·보급에서 결판났다.
같은 맥락에서 맥킨지의 2023년 생성형 AI 조사 보고서도 의미심장하다. 생성형 AI가 활용 리스크가 있음에도 이미 확산하고 있고,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일수록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활용 리스크 조사 결과다. 부정확성, 보안, 지식재산권 침해, 규제 준수, 설명 가능성, 프라이버시, 노동 문제, 공평과 공정 등의 순서다. 앞의 두 가지는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리스크지만, 나머지는 변화와 실정법의 괴리에서 오는 리스크다. 변화 속도와 강도, 범위는 함무라비 법전 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시스템의 탈(脫)구축이나 해체도 불사해야 할 판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대 기로에서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악(惡)의 평범성’을 초래한다는 시스템의 무비판적 수용을 넘어, 철학자 자크 데리다도 울고 갈 극심한 정치적 이항대립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실은 공무원의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책임의 무한 사슬’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감찰·감사·감독이 판치는 서슬 퍼런 책임 요구가 오히려 책임 회피의 방편이 되고 있는 이 현상은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라고 해야 맞는다.
거대 변화 앞에서 리더십과 책임성을 상실한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제도 개혁에서 앞서간다는 선진국이지만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개인과 기업은 실정법의 한계를 자기 규범으로 돌파하고 있다. 변동성(voli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등 이른바 ‘VUCA’는 세계적 현상이다. 정부가 무능하면 개인과 기업이 먼저 틀을 부수고 경계를 깰 수밖에 없다. KAIST 실패연구소는 도전에 따른 실패를 개인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하고 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실패에 대한 관점의 확장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도하는 한국공학한림원은 자동차·반도체·통신·도로의 경계를 없애는 글로벌 1등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들이 정부보다 백배 낫다.
한국의 정치와 정부가 과거와 싸우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 논쟁이 아니라 난데없는 이념 전쟁이 그렇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전체주의를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이 정당화되면 그 또한 전체주의와 한통속이 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갈라치기를 하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또한 전체주의란 점에선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전체주의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에서 나오는 혁신이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갖은 역풍을 헤쳐나온 자본주의가 미래로 가는 인공지능(AI) 혁명의 변곡점에 선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거역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다. 미·중 충돌 같은 변수는 이런 거대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2023년 AI 하이퍼 사이클을 내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운데이션 거대 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가 ‘기대의 최정점’에 올라선 모습이다. 묻지마 열기가 곧 식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지만, 게임체인지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기대와 현실의 조정 단계로 진입하면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갈릴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생성형 AI 기술 자체의 혁신과 생성형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혁신, 두 경로에서 벌어질 치열한 진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게임체인지는 발명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기술적 진화와 상용화·보급에서 결판났다.
같은 맥락에서 맥킨지의 2023년 생성형 AI 조사 보고서도 의미심장하다. 생성형 AI가 활용 리스크가 있음에도 이미 확산하고 있고,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일수록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활용 리스크 조사 결과다. 부정확성, 보안, 지식재산권 침해, 규제 준수, 설명 가능성, 프라이버시, 노동 문제, 공평과 공정 등의 순서다. 앞의 두 가지는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리스크지만, 나머지는 변화와 실정법의 괴리에서 오는 리스크다. 변화 속도와 강도, 범위는 함무라비 법전 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시스템의 탈(脫)구축이나 해체도 불사해야 할 판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대 기로에서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악(惡)의 평범성’을 초래한다는 시스템의 무비판적 수용을 넘어, 철학자 자크 데리다도 울고 갈 극심한 정치적 이항대립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실은 공무원의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책임의 무한 사슬’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감찰·감사·감독이 판치는 서슬 퍼런 책임 요구가 오히려 책임 회피의 방편이 되고 있는 이 현상은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라고 해야 맞는다.
거대 변화 앞에서 리더십과 책임성을 상실한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제도 개혁에서 앞서간다는 선진국이지만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개인과 기업은 실정법의 한계를 자기 규범으로 돌파하고 있다. 변동성(voli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등 이른바 ‘VUCA’는 세계적 현상이다. 정부가 무능하면 개인과 기업이 먼저 틀을 부수고 경계를 깰 수밖에 없다. KAIST 실패연구소는 도전에 따른 실패를 개인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하고 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실패에 대한 관점의 확장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도하는 한국공학한림원은 자동차·반도체·통신·도로의 경계를 없애는 글로벌 1등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들이 정부보다 백배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