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트리오의 손이 멈추자 모든 관객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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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트리오 콘서트
정경화·정명훈 남매 12년 만에
바이올리니스트·피아니스트로 호흡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등 연주
"K클래식 전설들의 찬란한 기록"
정경화·정명훈 남매 12년 만에
바이올리니스트·피아니스트로 호흡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등 연주
"K클래식 전설들의 찬란한 기록"

그럴 만한 연주였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정경화가 바이올리니스트로 함께한 것은 2011년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 이후 12년 만이었다. 사실상 연주 활동을 중단한 정명화(79)의 빈자리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지안 왕이 채웠다.
이후 정명훈과 정경화가 함께 등장하자 객석에선 마치 공연 피날레를 연상케 하는 열렬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치밀하게 설계된 풍부한 화성과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악상으로 채워진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정경화는 ‘바이올린 여제(女帝)의 귀환’을 알리듯 특유의 날카로운 색채와 섬세한 보잉(활 긋기)으로 강렬한 서정을 펼쳐냈다. 활을 현에 밀착한 채 아주 빠르게 내려치면서 정열적인 화음을 쏟아내다가 한순간에 모든 움직임을 줄인 채 애수에 찬 음색을 뽑아내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70년을 함께한 남매의 호흡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억지로 꿰맞춘 듯한 대목 하나 없이 색채부터 리듬 표현, 음향적 질감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정명훈은 연신 정경화의 몸짓을 살피며 작게 숨을 내쉬는 타이밍,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음의 세기 등을 예민하게 조절해냈다.
절규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강렬한 악상 표현과 짙은 우수를 쏟아내는 묵직한 첼로의 울림으로 이뤄낸 음향적 대비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점차 타건의 세기를 줄이면서 죽음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담담히 속삭이는 피아노를 따라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음정이 흔들리거나 도입부를 놓치는 등의 기교적 실수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깊은 음악적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소리에 완전히 스며들어 청중을 압도한 이들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광활한 에너지를 뛰어넘을 만한 것이었다. ‘전설들의 찬란한 기록.’ 이보다 더 정확히 이들의 연주를 표현할 말이 있을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