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6일 공개한 13세기 고려시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이솔 기자
문화재청이 6일 공개한 13세기 고려시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이솔 기자
나전칠기는 청자·불화와 함께 고려시대 대표 공예품 중 하나다. 옻칠한 목재에 미세하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인 정교한 기술력 덕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유물이 채 20점도 안 된다는 희소성은 그 가치를 더해준다.

고려 나전칠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새로운 유물이 8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일본에서 들여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나전칠기는 15건으로, 대부분 해외에 있다. 국내에는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나전모란넝쿨무늬경전함’을 비롯해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나전대모국화넝쿨무늬불자’ 등 3개뿐이다. 나머지는 일본 7개를 포함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30여 년간 보관된 탓이다. 지난해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그 존재를 처음 확인한 뒤 1년이 넘는 조사와 협상 끝에 문화재청이 매입했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전복 소라 조개 등 패류의 껍데기를 얇게 갈아 가공하고, 금속 장식을 덧대는 등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주로 불교 경전을 담는 경전함이나 염주 등을 담는 넓은 ‘합’의 형태를 띤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소형 상자 형태”라며 “어떤 용도로 쓰였을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숙제”라고 했다.

고려 나전칠기는 예로부터 뛰어난 품질로 정평이 났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온 송나라의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나전 솜씨가 세밀해 가히 귀하다”라고 썼고, <고려사>에도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나전칠기를 송, 요 등 외국에 선물한 기록이 나온다.

너비 33㎝, 폭 18.5㎝, 높이 19.4㎝짜리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에는 기존 고려 나전칠기에서 발견된 모든 무늬가 들어 있다. 770여 개의 국화넝쿨무늬와 30개의 모란넝쿨무늬가 새겨졌다. 작은 구슬을 연결해 만든 연주 무늬 1670개가 상자 외곽을 따라 촘촘히 둘려 있다. 장식은 총 4만5000여 개에 이른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통상 나전칠기는 만든 지 오래되면 목재가 부식해 온전한 형태로 남기 어렵지만, 이번 유물은 심각한 손상이나 덧칠한 부분이 거의 없다. 나전 본연의 영롱한 오색 빛깔도 간직했다. 최 청장은 “이렇게 보존 상태가 완벽한 나전칠기는 처음 본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을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면서 나전칠기 전통 기술 복원을 위한 연구와 전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