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자본과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가시화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중국 밖으로 이동하고, 글로벌 기업은 새로운 전진기지를 찾고 있다. 이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IFS)의 진단이다.

국가미래전략원은 6일 낸 ‘글로벌 한국 클러스터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한 전략으로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산업 분야별로 지역을 정해 연구개발(R&D)센터 10여 개를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관련 R&D센터는 경기 화성과 성남 판교가 후보지로 거론됐다. 네덜란드 ASML과 일본 알박 등을 공략 대상으로 꼽았다. 삼성전자가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일본 기업이 한국에 기술센터를 짓는 방안도 언급했다. 테슬라, 구글 등 빅테크의 자율주행자동차와 로봇 등 디지털 관련 센터의 유력 후보지로는 인천 송도와 김포·마곡 지구 등을 꼽았다.

외국인 투자자금은 중국을 이탈해 한국으로 일부 유입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외국인직접투자액은 114억5894만달러로 작년 2분기(56억3953만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170억달러를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 리스크를 분산하는 차원에서 주변국으로 투자금이 들어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핵심 연구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는 선도형 혁신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격자형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주요 과학기술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1위 국가의 8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은 89.1%, 자율주행차 88.4%, 양자정보통신 86.9%, 전파·위성은 85.9% 등이었다. 국가미래전략원은 AI와 양자과학 기술에서 선도형 혁신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위해선 인프라와 제도 등 제반 환경이 중요하다. 국가미래전략원은 물류와 금융의 발전이 전제조건이라고 판단했다. 항만도시이자 금융 중심지인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베트남 탄자니아 멕시코 등에 물류거점을 조성하고 이를 부산, 인천의 역량과 연결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 같은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상황 변화가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세계 10대 컨테이너 항만 중 7개를 보유한 국가다. 선진국과 중국 경제가 점진적으로 탈동조화(디커플링)하는 과정에서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주도적 강대국이 되기 위해선 국력 강화와 함께 정체성 확립도 시급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은 경제 발전 등으로 국력이 크게 강해진 것으로 평가됐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주도할 역량을 갖췄다.

정신력과 정체성 측면에서는 ‘사춘기 청소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고착화한 피해의식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 스스로 민주적·자주적으로 만든 건국 헌법의 정신을 강조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는 한국의 미래 발전 방향인 ‘개방적 네트워크 강대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