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대 전재산, 직접 보고 살래"…고금리에 빛보는 후분양
수억원짜리 물건을 보지도 않고 구매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아파트 분양시장이다. 생활용품, 의류 등도 직접 살펴보고 사는데, 내 집 마련할 때는 모델하우스만 보고 사야 한다. 이런 소비자의 비판을 반영한 게 후분양 단지다. 최근엔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이 커지면서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후분양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선분양 아파트와 달리 후분양 아파트를 보면 실제 지어진 아파트(대체로 공정률 80% 이상)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공급자 중심의 선분양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과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최근 들어 수요자 중심의 후분양 방식도 잇따르고 있다. 선분양과 후분양 아파트의 장단점에 대해서 알아봤다.

공정률 80% 이상 아파트, 직접 보고 구매

아파트는 분양 시점에 따라 크게 선분양과 후분양으로 나뉜다. 선분양은 착공할 때 아파트값의 10%인 계약금을 낸 후 아파트가 준공될 때까지 중도금, 잔금 등을 내는 방식이다. 후분양은 공정률이 60~100%인 시점에서 분양하는 방식이다.

후분양 제도가 선분양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를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분양은 건설사가 제공하는 조감도와 견본주택을 참고해서 아파트를 살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감도와 다른 부분이 있다든지, 실제 공정 과정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요즘엔 부실 공사 논란과 하자 갈등도 잇따르고 있어 후분양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 하자 심사·분쟁조정위원회 사건 접수 건수는 2018년 3818건에서 2021년 7686건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마감 불량부터 석재 파손, 누수·결로, 설계 도면과 다른 시공 등 다양한 사례로 하자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후분양은 선분양과 달리 부실시공이 발생하면 미분양 발생에 따른 리스크를 건설사가 모두 떠안아야 하므로 자발적으로 품질 관리에 힘써야 하는 구조다. 후분양 단지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골조 공사는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동별 배치와 주변 지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많다.

공사 진행 과정에서 자재가 변경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 확인한 상품성을 입주 시 그대로 누릴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선분양은 제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제품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분양 완료 이후에는 소비자 눈치를 덜 보게 된다"며 "이런 구조로 인해 부실 공사 가능성이 후분양에 비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층엔 자금부담 단점, 이자부담 낮은 편

후분양 아파트는 선분양에 비해 목돈이 없는 젊은 층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선분양은 계약금 10%만 있으면 중도금과 잔금은 향후 입주할 때까지 나눠서 내면 된다. 중도금 대출도 대부분 가능한 만큼 사실상 입주 때까지 입주금 10%와 중도금 이자 정도만 물면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후분양은 입주 시기가 몇 달 내이거나 바로 입주도 가능하기 때문에 분양가를 바로 납부해야 한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후분양을 선호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선분양 대비 중도금 납부 기간이 비교적 짧은 만큼 이자 부담이 낮고, 재산권 행사 역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서다. 지난 7월 서울 강동구 일원에 후분양 단지로 공급된 '둔촌 현대수린나'는 1순위 평균 36.9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경기 평택에서 후분양한 '호반써밋 고덕신도시 3차'도 1순위 평균 82.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00% '완판(완전 판매)'됐다.
최근 후분양에 나선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투시도.
최근 후분양에 나선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투시도.
대우건설이 이달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공급한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일반분양 401가구 모집에 5626명이 접수해 평균 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2024년 3월 입주를 앞둔 후분양 단지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이 가까워 강남구청역까지 환승 없이 20분대 이동할 수 있다. 전용면적 74㎡ A, 84㎡ A 타입(일부 가구)에 개방형 발코니가 설치된다. 지하 5층~지상 18층, 10개 동, 전용면적 59~84㎡ 총 771가구 규모로 공급된다.

건설사는 자금조달 측면에서 선분양이 훨씬 유리하다. 착공 후엔 아파트값의 10%를 계약금으로 받고 공사가 진행될 때마다 중도금까지 받기 때문이다. 후분양 단지처럼 완공 후 분양하려면 건설사가 자기 자금을 투입하거나 금융권에서 공사 자금을 빌려야 하는 만큼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자금조달 능력이 있고 공공성을 중시하는 LH, SH 등에선 후분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후분양은 건설사의 자금조달 비용이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일부 단지는 선분양에 실패한 후 미분양 이력을 숨기기 위해 후분양이라고 포장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락기엔 인기, 하반기 분양 물량 어디?

집값 상승기엔 선분양이 선호된다. 입주 시점인 2~3년 후 시세보다 분양 시점 시세가 더 싸기 때문에 상승분을 얻을 수 있어서다. 반대로 하락기엔 후분양이 낫다. 후분양 방식은 선분양에 비해 분양가와 시세 차이가 적은 편이기 때문에 저위험 저수익을 원하는 실수요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투자가 아닌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후분양 방식이 선호된다. 공사비 인상, 부실시공 등 입주 시점이 연장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에서 공급된 후분양 아파트로는 마포구 '마포 더클래시', 강동구 '더샵 파크솔레이유'가 있었다. 둘 다 각각 1순위 청약에서 19.4대1, 15.7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건설이 광주 북구 신용동에 공급한 후분양 단지 '힐스테이트 신용 더 리버' 조감도.
현대건설이 광주 북구 신용동에 공급한 후분양 단지 '힐스테이트 신용 더 리버' 조감도.
올해 공급되는 후분양 단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대건설은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일원에 '힐스테이트 신용 더 리버'를 분양 중이다. 광주도시철도 2호선 신용역(가칭)이 개통될 예정이고 광주첨단과학산업단지 1, 2지구와 3지구(예정) 등이 가깝다. 단지 건폐율이 12.94%로 동 간 거리를 최대한 확보했다. 단지 출입구에 고급 리조트와 같은 수경시설을 적용했다. 2024년 3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지하 2층~지상 29층, 19개 동, 전용 74~135㎡ 총 1647가구로 이 중 206가구가 일반분양으로 공급된다.

동부건설은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일원에서 '용인 센트레빌 그리니에'를 분양 중이다. 한성CC, 경기남부경찰청용인체력단련장CC 등이 가깝다. 단지 반경 700m 이내에 마북IC가 있어 경부·영동 고속도로 진출입도 쉽다. 2023년 10월 입주하는 후분양 아파트다. 지하 2층~지상 최고 19층, 3개 동, 전용면적 84~139㎡ 총 171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경기주택도시공사와 DL이앤씨는 경기 화성 동탄2택지개발지구 A94 블록에서 '동탄레이크파크 자연& e편한세상'을 분양할 예정이다. 미세먼지 저감 시스템인 '스마트 클린&케어 솔루션'이 도입된다. 2024년 6월 입주 예정이다. 지하 3층~지상 25층, 18개 동, 총 1227가구 규모다. 이 중 전용면적 74·84㎡ 907가구는 공공분양, 전용면적 95·115㎡ 320가구는 민간분양으로 공급한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