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르는 스코틀랜드 북해 절벽…박물관 외벽에 대자연을 심다
지난달 광활한 스코틀랜드의 대자연에 몸을 맡겼다. 북부 여행을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에든버러를 향하던 중이었다. 함께 여행하던 지인은 ‘던디’에 들르자고 했다. 던디? 스코틀랜드 동쪽 무역항, 산업혁명을 거치며 항해와 산업용 밧줄을 만드는 식물 ‘주트(jute)’ 생산지로 세계사에 잠시 한 줄 기록을 남긴 곳. 이 별다른 매력도 없는 낯선 곳을 왜 굳이 가야 하나 의아해하던 차, 숨이 턱 막히는 광경이 펼쳐졌다. 낯설지만 어디서 본 듯한 거대한 건물이 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52년 만들어진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뮤지엄이 런던 밖에 최초로 지은 미술관, V&A 던디였다.

그렇다! 던디는 이렇게 이 건축물 하나만으로도 방문 가치가 충분한 곳이 됐다. 쇠락하는 산업으로 도시의 성장동력이 떨어지자 시 정부는 2001년 당시 무려 10억파운드(현재 환율로 1조6700억원) 예산의 30년 장기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 일환으로 이 걸출한 건축물이 자리를 잡았다.

구마 겐고는 2010년 이 건물의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다. 스코틀랜드 북해의 절벽 ‘눕 헤드(Noup Head)’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바다와 땅이 수천, 수만 년의 시간 동안 때론 거칠고 때론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일군 절경을 던디 시내 중심부 테이 강변에 자연의 일부처럼 옮겨 놨다.

견고하고 육중한 패널 수천 개가 만들어 내는 외관은 시선을 압도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자연을 닮은 모습 때문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구 옆 안쪽으로 동굴처럼 강가로 향하는 길은 동심마저 자극한다. 높은 층고의 내부는 차양처럼 설치된 외장재 덕분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스코틀랜드의 하늘을 반영한다. 날씨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 즐길 수 있었다.V&A 던디는 완공된 지 불과 5년 만에 시민들의 쉼과 놀이 공간이 됐다. 마치 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던디=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