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가 알림판에 하숙 및 원룸 공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대학가 알림판에 하숙 및 원룸 공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스1
"2017년부터 7년째 여기 살고 있습니다. 한 달에 25만원으로 거주와 식사가 보장되니 정말 만족스러워요. 특히 코로나19 비대면 수업 당시 다달이 나가는 월세 아까워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습실, 헬스장까지 있으니 안 들어갈 이유가 없죠."(충북학사 입주생 장모씨)

서울에서 대학생이 한 달에 20만원이면 주거와 아침, 점심, 저녁 3끼 식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하숙도 기숙사도 아닌 '향토 학사'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출신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입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사이에선 '졸업 후에도 평생 이용하고 싶은 곳'으로 불립니다. 과거엔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장학생 모집 공고보다도 경쟁률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 평균 월세가 60만원에 육박하면서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향토학사, 月 10만~25만원에 '식사+숙소'

9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지역 향토학사에 입사 경쟁률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미달로 추가모집을 했지만, 이제는 2대 1이 기본입니다. 최근에는 5대 1까지 경쟁률이 치솟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수용인원이 1454명으로 가장 많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학숙'(광주·전남)의 지난해 경쟁률은 2.3대 1(749명 모집)로 집계됐습니다. 1994년 개원 당시 1.6대 1(810명 모집)의 경쟁률을 기록하더니 입소문이 나면서 지원자가 늘었습니다.
학사생 수용인원이 가장 많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 학숙'(광주ㆍ전남) 전경. 사진=이현주 기자
학사생 수용인원이 가장 많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 학숙'(광주ㆍ전남) 전경. 사진=이현주 기자
서울에 있는 학사일수록 지방보다 2배 이상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올해 1학기 충북학사 경쟁률을 보면 영등포구 당산동 '서서울관'은 3.3대 1(100명 모집), 중랑구 중화동 '동서울관'이 5대 1(100명 모집)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청주 상당구 방서동 '청주관'은 1.9대 1(80명 모집)이었습니다. 200명을 모집하는 서울 학사에만 800여명이 지원했습니다.

이마저도 신축 학사의 경우 경쟁률이 더 치열합니다. 가장 최근에 건립된 충남학사(2020년 설립)에 살았다는 이모씨(24)는 "같은 지역 출신 사람들끼리 지내면서 친목 도모가 가능하니 건립 초기부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난 상태였다"며 "경쟁률이 높아서 합격 발표까지 초조한 마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서울 소재 향토학사는 모두 8곳입니다. 경기푸른미래관(도봉). 강원학사(관악·도봉), 충남서울학사(구로), 충북학사(영등포·중랑), 전라북도 서울장학숙(서초), 광주ㆍ전남 남도학숙(동작·은평), 제주탐라영재관(강서), 경남 남명학사 서울관(강남) 등입니다.

매년 입사생 모집은 연 1회 12월 말~1월 초에 진행됩니다. 추가 정원(TO)에 따라 2학기 모집을 진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해당 지역 출신 수도권 소재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이라면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보호자가 해당 지역(공고일 기준)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지원자의 소득분위, 학교 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격자를 선발합니다.

상승한 임대료에 식비까지 '부담'…"졸업해도 안 나갑니다"

학사시설은 기숙사와 비슷합니다. 단체 생활을 하다보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2인 1실, 3인 1실 등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해야 하고 통금 시간 등 엄격한 생활 규율을 적용받습니다. 지역 학사 대부분은 도심과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학교 위치에 따라 통학 거리 편차도 큽니다.

대학생들이 학사에 들어가게 되면 자유로운 생활을 기대했던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사감도 있다보니 통금시간을 자주 어기거나 식사횟수를 못채우게 되면 경고를 받기도 합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는 학생들이나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학생들의 경우에는 갑갑하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보니 과거에는 외면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인기가 치솟은 배경에는 대학가 인근 원룸 임대료 의 상승에 있습니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다방이 서울 주요 대학가 매물의 평균 월세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보증금 1000만원 기준 원룸(전용면적 33㎡ 이하)의 평균 월세는 59만9000원에 육박했습니다. 전년 동기(57만9000원) 대비 3.53% 올랐고, 지난 2월 평균 월세(58만9000원)보다는 1.7% 오른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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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학별로 보면 연세대학교 인근 지역(52만6000원에서 79만원)이 전년 대비 50% 오르며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고, 그다음으로 △경희대학교(서울캠퍼스) 18.1%(52만5000원에서 62만원) △고려대학교 13.47%(48만5000원에서 55만원) △서울대학교 6.76%(46만8000원에서 50만원) △한양대학교 4.15%(50.9만원에서 53만원) 등 올랐습니다.

학생들은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지출을 생각해야 합니다. 50만~60만원대 월세와 함께 급격하게 올라버린 생활비와 식비, 관리비 등도 부담입니다. 다방 관계자는 "서울 지역 전체 월세 상승도 있지만, 대학가의 경우 통상적으로 2월에 좋은 매물이 소진되고 2학기 전인 8월에 공급이 부족한 상태가 되면서 월세가 올랐다"고 설명했습니다.

향토학사의 평균 월 부담금은 10만~25만원 정도입니다. 대학가 평균 월세의 3분의 1 수준인 겁니다. 숙소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식사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한 월세만으로는 비교도 할 수 있는 가격으로 여겨집니다.

"전세 사기에 월세 더 올라…저렴한 주거시설, 인기일 수 밖에"

향토학사 인기가 높아진 또 다른 요인으로 대학 기숙사 수용률이 낮다는 점도 꼽힙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수도권 대학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17.8%로 조사됐습니다. 대학 진학으로 상경하는 대다수의 학생은 기숙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즉 기숙사에 떨어진 학생들은 대개 비싼 월세를 내고 학교 인근 원룸에서 자취해야 합니다.

기존에 학사에 살던 학생들이 나가지 않는 이유도 있습니다. 취직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했더라도 학사 거주가 가능합니다. 예전에 비해 빈자리가 줄다보니 경쟁률도 높아지는 겁니다.

이 밖에 장점으로는 정보 공유와 안전 등이 꼽힙니다. 향토학사에는 등록금, 생활비, 학업 장려금, 해외 교환학생 학비 등 여러 명목의 장학금 공고가 주기적으로 올라옵니다. 학사에는 CCTV가 있고 관리자가 있다보니 비교적 안전한 주거시설입니다.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입니다.
학사생 수용인원이 가장 많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 학숙'(광주ㆍ전남) 전경. 사진=이현주 기자
학사생 수용인원이 가장 많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 학숙'(광주ㆍ전남) 전경. 사진=이현주 기자
전문가들은 향토학사 경쟁은 향후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대학가 근처 하숙도 많이 줄어 학생들의 선택지가 줄어든데다 최근 전세사기, 역전세난 등으로 월세 수요가 높아지면서 월세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임대업계 관계자는 "원룸의 전세 기피 현상이 나타나면서 월세가 더 상승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여 기숙사나 학사 등의 인기도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촌 지역 공인중개 관계자는 "코로나 당시 월세가 소폭 떨어졌다가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며 "신촌에서 월 60만원 이하인 매물은 현재 거의 없는 상태라서 하숙이나 고시원 문의도 많아졌다"고 귀띔했습니다.

2030세대 대다수에게 '집'은 빌려사는 공간입니다. 안정적인 삶의 터전이 돼야하는 집이지만, 최근 전세사기 같은 문제로 사회 경험이 적은 2030세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현주의 빌려살기'는 안정적인 주거활동을 꿈꾸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현장을 집중 취재하고 크고 작은 부동산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