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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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당뇨치료제 훈풍 속 제약·바이오주가 꿈틀대고 있다. 살빼는 약에 대한 강한 열망이 투자심리에 불을 지폈다.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 임상 결과 발표 등 굵직한 이벤트를 앞둔 기대감도 업종 전반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제약·바이오주가 이차전지를 잇는 증시 주도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KRX300헬스케어지수와 헬스케어지수는 전장 대비 각각 1.76%, 1.74% 올랐다. 거래소가 개발한 KRX지수 28개 가운데 각각 3~4번째 높은 상승률이다. 코스닥제약지수는 2.88% 뛰어 코스닥 관련 지수 중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같은날 신한자산운용의 'SOL의료기기소부장Fn' 상장주식펀드(ETF)는 3.37% 상승해 거래소에 상장된 760개 ETF 가운데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삼성자산운용의 'KoAct 바이오헬스케어 액티브'와 타임폴리오운용의 'TIMEFOLIO K바이오액티브' ETF도 각각 2.7%, 2.47% 올라 수익률 순위 2위, 5위에 올랐다. 모두 지난달 거래소에 상장한 국내 바이오 ETF다.

지난 1주일(9월 1~8일)간 기준으로도 KRX헬스케어지수는 1.59%, 코스닥제약지수는 1.53% 상승했다. 이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0.34%, 1.53% 내린 것과 대조된다. KRX헬스케어는 같은 기간 28개 KRX지수 가운데서도 상승률이 3번째로 높았다.

없어서 못 판다…비만·당뇨 신약에 투심 들썩

코로나19 사태 후 2년간 침체기를 겪었던 제약·바이오주의 투자심리를 일깨운 건 비만·당뇨치료제다. 체중 감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사 한 방으로 비만 치료가 가능하단 소식이 관련주 투심을 자극했다. 최근엔 미국 정부가 대마의 법적 마약류 등급을 낮출 것이란 소식에 국내 대마 관련주가 들썩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 업체도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업종 내 온기가 감돌고 있다.

비만·당뇨치료제의 시작은 해외였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주사제 '위고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해 위고비의 글로벌 매출은 120억8100만크로네(약 2조원)으로 전년 대비 367% 급증했다. 위고비의 당뇨치료제 버전인 '오젬픽'도 매출이 같은 기간 61% 크게 늘었다.


위고비·오젬픽의 흥행에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8일(현지시간) 기준 뉴욕증시에서 연초 대비 43%가량 뛰었다. 최근 유럽증시에선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티제파타이드)'도 내년 초 출시가 점쳐지면서 시장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때다 싶은 국내 업체들이 너도나도 비만·당뇨치료제 개발 소식을 알리면서 주가가 최근 급등세를 보였다. 일동제약은 비만·당뇨병 '먹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다고 밝힌 지난 6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같은날 지주사인 일동홀딩스도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뛰었다. 인벤티지랩(62.74%), 팹트론(54.67%), 애니젠(27%), 아이센스(24.84%) 등 비만·당뇨치료제 관련주는 지난 한 달(8월 8일~9월 8일) 사이 큰 폭으로 올랐다.

앞으로도 분위기 좋다…빅이벤트 '주목'

이같은 긍정적인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이달부터 '블록버스터'급 신약 임상 결과 발표가 여럿 예정돼 있어서다. 다음달엔 유럽종양학회에서 유한양행·오스코텍이 개발한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임상 3상 결과가 공개된다. 렉라자의 경쟁약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와 항암화학 병용요법을 평가한 임상 3상(플라우라2) 결과는 오는 9~12일 세계 폐암학회 국제학술대회(WCLC)에서 발표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초 세계 폐암학회에서 레이저티닙의 경쟁약 타그리소의 임상 결과 발표가 있고, 9월 말 3분기 실적 선공개(프리뷰)를 앞두고 높은 이익 성장을 보일 기업들 중심으로 관심이 집중되며 주가가 상승세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0월에는 유럽종양학회에서 국내 기업들의 중요한 임상 결과 발표가 있고, 10월 말엔 셀트리온 짐펜트라(성분명 인플릭시맙·자가면역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피하주사(SC) 제형) 미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이 예상돼 9월 말부터는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해 긍정적 투자심리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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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제약·바이오 업종을 짓눌렀던 금리 인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 CNBC에 따르면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 중앙은행(Fed)이 내년 2분기부터 매우 점진적인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 전망을 앞세운 상승 효과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르더라도 팬데믹(세계적대유행) 기간 유례없던 호황은 당분간은 누리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업종 전반이 완만한 우상향 흐름을 그리는 가운데 비만·당뇨치료제와 같은 성장성이 높은 일부 제약·바이오 업체의 주가가 확 튈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AI 기반 신약을 주력으로 내세운 업체의 경우 성과가 아직 실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만큼 단순한 기대감만으로 투자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는 "드러나진 않지만, 바이오벤처 중 임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업체들이 있는데, 한 번 주목받으면 아마 주가 성장폭이 클 것"이라며 "임상 2상에서 의미있는 수치를 확보한 바이오벤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상 2상에 성공했다는 건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다만 이 대표는 "AI가 신약 개발에 있어 많이 활용될 것이란 방향성은 유효하지만, 실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업체들 간 주가 차별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단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