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점유한 건물을 위법한 방법으로 뺏겼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돌려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부동산관리업체 A사가 시공업자 B씨를 상대로 낸 건물명도(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충북 청주에 있는 한 건물의 신축공사 대금 20억5000만원을 받지 못하자 2012년 10월부터 해당 건물을 점유하며 유치권을 행사했다. A사 대표인 C씨는 2019년 5월 B씨를 찾아가 유치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B씨의 얼굴을 때려 상해를 입혔다. C씨는 다음날에도 B씨를 찾아갔고, 위협을 느낀 B씨는 건물에서 퇴거했다. A사는 그때부터 건물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B씨는 며칠 뒤 용역직원 약 30명을 동원해 해당 건물의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A사 직원들을 내보낸 뒤 건물을 다시 점유했다. 이후 A사는 ‘점유자가 점유의 침탈을 당한 때에는 그 물건의 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민법 제204조 제1항을 근거로 B씨를 상대로 건물을 점유할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모두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사가 먼저 B씨의 점유를 위법하게 침탈했다”며 “B씨가 건물을 다시 점유한 행위가 A사의 점유를 침탈했다는 이유로 A사가 B씨에 점유를 회수한다고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A사의 점유 회수 청구가 받아들여지더라도 현재 점유자인 B씨가 상대방의 위법한 점유 침탈을 또다시 문제 삼아 점유를 회복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엔 민법을 근거로 점유의 회수를 청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