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싼값에 효과 좋다더니…독약이 돼버린 어느 제네릭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라벨 뒤의 진실
캐서린 에반 지음
조은아 옮김 / 시공사
512쪽 | 2만4000원
인도 '란박시 스캔들' 조명
미국에 제네릭 판매하는 제약사
의약품 효능 데이터 조작하고
가짜 실험실 만들어 FDA 농락
환자들은 심각한 부작용 겪어
제네릭은 저렴…순기능 크지만
관리부실 땐 치명적 결과 초래
캐서린 에반 지음
조은아 옮김 / 시공사
512쪽 | 2만4000원
인도 '란박시 스캔들' 조명
미국에 제네릭 판매하는 제약사
의약품 효능 데이터 조작하고
가짜 실험실 만들어 FDA 농락
환자들은 심각한 부작용 겪어
제네릭은 저렴…순기능 크지만
관리부실 땐 치명적 결과 초래
2008년께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피플스 파머스’에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흔히 ‘제네릭’이라고 불리는 복제 의약품을 복용한 사람들의 불평이었다.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고 했다. 방송 진행자이자 약리학자인 조 그레이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전달했다. “제네릭은 브랜드 의약품과 동등하며 환자들의 반응은 주관적”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레이든은 자신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캐서린 에반에게 도움을 청했다.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미국에서 팔리는 제네릭 의약품의 약 40%가 인도에서 생산되고, 브랜드와 제네릭 의약품에 쓰이는 유효 성분의 80%는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에반은 내부 고발자를 찾고, 제조 공장을 방문하고, 정부 관료를 만났다. 중국 정부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취재한 결과물인 <라벨 뒤의 진실>이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돼 나왔다.
책의 중심 서사는 ‘란박시 스캔들’이다. 란박시는 인도 제약회사다. 1961년 설립돼 제네릭 의약품업계 큰손으로 성장했다. 제네릭이란 브랜드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여러 제조업체에서 합법적으로 생산하는 저가 복제 의약품을 말한다. 효능이 오리지널과 동등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판매 허가를 받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났다. 란박시에 대한 FDA의 조사가 시작됐고, 2013년 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으면서 일단락됐다.
내부 고발자인 디네시 타쿠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은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대폭 낮춰줄 것으로 기대됐던 제네릭이 어떻게 ‘사기’로 변질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타쿠르는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에서 약 10년 동안 일한 뒤 란박시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2003~2005년 재직하는 동안 그가 목격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약물 데이터 위조가 횡행했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효능이 달랐지만, 같은 것처럼 보이게 데이터를 조작했다. 제네릭이 미국에서 만들어질 땐 FDA가 언제든 공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인도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미국 국무부는 인도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FDA가 공장을 방문하기 몇 주 전에 미리 통지하도록 했다. FDA 검사관이 도착했을 때 공장은 이미 말끔히 정리된 후였다. 심지어 FDA 검사를 위한 가짜 공장과 시험실이 지어지기도 했다.
FDA가 버티고 있는 미국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남미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규제가 허술한 곳엔 품질이 더 낮은 제네릭을 보냈다. 아프리카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과 세균성 질병 등으로 의약품이 많이 필요한데도, 효능이 없거나 미미한 제네릭 탓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의사들 사이에선 의도한 효과를 얻으려면 일반적인 복용량의 2배에서 10배까지 처방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란박시는 2013년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을 낸 뒤 다른 인도 제약사인 선파마에 팔렸다. 하지만 저자는 문제가 란박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007년 미국에서 수십 명의 신장 환자가 투석 후 알레르기 반응으로 사망했다. 중국에서 제조된 혈액 희석제인 헤파린에 오염물질이 섞여 들어간 게 원인이었다. 2012년엔 항우울제인 웰부트린의 제네릭 버전을 먹은 환자 중 일부가 두통, 메스꺼움, 자살 충동 등의 부작용을 경험했다. FDA 조사 결과 이스라엘 제약사 테바가 제조한 이 제네릭은 오리지널 약과 같지 않았다. 책에 나오진 않지만 지난해 아프리카 감비아에선 인도산 기침 시럽을 먹고 66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일도 있었다.
모든 제네릭을 싸잡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필수 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을 벌였던 에미 맥린은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한 덕에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이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비싼 브랜드 약을 먹을 여력이 안 되는 선진국의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만 책은 지금의 의약품 생산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꽤나 무서운 제네릭 산업의 이면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그레이든은 자신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캐서린 에반에게 도움을 청했다.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미국에서 팔리는 제네릭 의약품의 약 40%가 인도에서 생산되고, 브랜드와 제네릭 의약품에 쓰이는 유효 성분의 80%는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에반은 내부 고발자를 찾고, 제조 공장을 방문하고, 정부 관료를 만났다. 중국 정부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취재한 결과물인 <라벨 뒤의 진실>이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돼 나왔다.
책의 중심 서사는 ‘란박시 스캔들’이다. 란박시는 인도 제약회사다. 1961년 설립돼 제네릭 의약품업계 큰손으로 성장했다. 제네릭이란 브랜드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여러 제조업체에서 합법적으로 생산하는 저가 복제 의약품을 말한다. 효능이 오리지널과 동등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판매 허가를 받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났다. 란박시에 대한 FDA의 조사가 시작됐고, 2013년 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으면서 일단락됐다.
내부 고발자인 디네시 타쿠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은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대폭 낮춰줄 것으로 기대됐던 제네릭이 어떻게 ‘사기’로 변질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타쿠르는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에서 약 10년 동안 일한 뒤 란박시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2003~2005년 재직하는 동안 그가 목격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약물 데이터 위조가 횡행했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효능이 달랐지만, 같은 것처럼 보이게 데이터를 조작했다. 제네릭이 미국에서 만들어질 땐 FDA가 언제든 공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인도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미국 국무부는 인도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FDA가 공장을 방문하기 몇 주 전에 미리 통지하도록 했다. FDA 검사관이 도착했을 때 공장은 이미 말끔히 정리된 후였다. 심지어 FDA 검사를 위한 가짜 공장과 시험실이 지어지기도 했다.
FDA가 버티고 있는 미국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남미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규제가 허술한 곳엔 품질이 더 낮은 제네릭을 보냈다. 아프리카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과 세균성 질병 등으로 의약품이 많이 필요한데도, 효능이 없거나 미미한 제네릭 탓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의사들 사이에선 의도한 효과를 얻으려면 일반적인 복용량의 2배에서 10배까지 처방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란박시는 2013년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을 낸 뒤 다른 인도 제약사인 선파마에 팔렸다. 하지만 저자는 문제가 란박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007년 미국에서 수십 명의 신장 환자가 투석 후 알레르기 반응으로 사망했다. 중국에서 제조된 혈액 희석제인 헤파린에 오염물질이 섞여 들어간 게 원인이었다. 2012년엔 항우울제인 웰부트린의 제네릭 버전을 먹은 환자 중 일부가 두통, 메스꺼움, 자살 충동 등의 부작용을 경험했다. FDA 조사 결과 이스라엘 제약사 테바가 제조한 이 제네릭은 오리지널 약과 같지 않았다. 책에 나오진 않지만 지난해 아프리카 감비아에선 인도산 기침 시럽을 먹고 66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일도 있었다.
모든 제네릭을 싸잡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필수 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을 벌였던 에미 맥린은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한 덕에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이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비싼 브랜드 약을 먹을 여력이 안 되는 선진국의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만 책은 지금의 의약품 생산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꽤나 무서운 제네릭 산업의 이면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