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대전 교사 추모에 발길
추모공간 앞에 학생·학부모· 주민·동료 교사들 긴 줄
학부모들 "밝은 미소를 가진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
[현장]'"지금 공교육은 좋은 선생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열정이 자신을 갉아 먹으니까 신입 교사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해요"
악성 민원으로 힘들어하다 세상을 등진 40대 대전 초등 교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된 유성구 한 초등학교. 9일 오후 이곳에 길게 늘어선 근조화환을 둘러보던 26년 차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교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인데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일부러 왔다"면서 "열정을 가지고 일하면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지금 공교육은 좋은 선생님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야속하리만큼 화창한 하늘 아래 많은 인파가 검은색 옷을 입고 추모 공간에 모여들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적힌 추모 공간에는 국화꽃이 가득하고, 추모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자녀들과 함께 온 학부모, 지역 주민들, 동료 교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많은 학부모는 악성 민원 때문에 좋은 선생님을 잃었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딸과 함께 왔다는 40대 홍모 씨는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소문이 자자한 분인데, 좋은 사람의 인생과 가정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린 가해 학부모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나와봤다"고 말했다.

[현장]'"지금 공교육은 좋은 선생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피해 교사 A씨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던 2019년 당시 같은 반 학부모였다는 관평동 주민 B씨도 자녀들과 함께 학교에 방문했다.

B씨는 "당시 선생님을 고소한 학부모는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아무 잘못 없는 선생님이 4년 만에 이렇게 떠나시게 됐다는 사실에 계속 마음이 울컥거린다"며 울먹거렸다.

추모 공간 옆으로는 추모 메시지를 적은 쪽지가 가득 붙어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곳에선 부디 평안하세요', '선생님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공교육이 회복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는 메시지 옆으로 한 학부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쪽지를 쓰고 있었다.

교사 A씨가 생전 담임을 맡았다는 학부모 30대 김모 씨는 "정말 좋은 분이었고 밝은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라고 A씨를 기억했다.

김씨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놀랄까 봐 선생님이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안내를 했다는데, 아이가 그날 울면서 집에 왔더라"며 "아이들은 자신들 때문에 선생님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정말 잘 따랐다"고 설명했다.

김씨 옆에 있던 5학년생 아들은 "저희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 같아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현장]'"지금 공교육은 좋은 선생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교사 A씨에게 운동을 가르쳤다는 운동 선생님 C씨는 수술 직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지만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C씨는 A씨에 대해 "한 번도 내게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밝고 착한 회원이라 이런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운동을 가르치던 나를 걱정해주던 정이 많던 사람"이라며 오열했다.

용산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40대 조모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아이를 더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좋은 선생님들이 올바른 교육을 하다가 더는 피해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앞서 A씨는 지난 5일 오후께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에 숨졌다.

대전교사노조와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그는 2019년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친구를 폭행한 학생을 교장실에 보냈다는 이유 등으로 해당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고 수년간 악성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