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대 가는 인도, 의대 가는 한국
지난달 23일 인도가 개발한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했다. 우주개발 강국인 러시아, 일본도 실패한 터라 인도의 성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찬드라얀 3호의 개발·발사에 든 비용은 총 7500만달러(약 900억원). 2013년 개봉한 조지 클루니 주연의 우주 재난 영화 ‘그래비티’의 제작비 1억달러에도 못 미친다. 미국 정부가 2021년 달 착륙선 예산으로 항공우주국(NASA)에 배정한 예산 8억5000만달러(약 1조1228억원)의 약 11분의 1이다.

최초 달 남극 착륙은 공대의 힘

인도 우주개발의 ‘초 가성비’ 비결은 우수한 과학 인재들이다. 그 중심엔 인도공과대(IIT)가 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IBM 대표 아르빈드 크리슈나 등 실리콘밸리 거대기업의 여러 수장을 배출한 공대다. IIT는 인도 국부 자와할랄 네루가 1959년 “굶주림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한 대학이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엄존한 인도에서 IIT 입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확실한 신분 탈출구였다. 입학과 동시에 신분의 추월차선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과 꿈에 그리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다. 매년 고3과 재수생을 포함, 2400만여 명의 수험생 가운데 최고의 인재 1만6000명만 입학한다. 2차 최종 시험과목은 수학, 화학, 물리 단 3개다. 1차 시험을 통과해야 볼 수 있는 2차 시험 응시 기회는 평생 단 두 번만 주어진다.

IIT 한 해 졸업생 1만6000명 가운데 3000여 명은 정보기술(IT) 분야 인력이다. 인도에서 연간 배출되는 전체 IT 관련 대학 인력 10만 명의 약 3% 비중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저비용 고효율’이 인도 IT산업 경쟁력이 근간이다. 영화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달 남극에 탐사선을 보낸 원동력이다.

'탈 공대·의대 쏠림' 대책 시급

인도가 달 남극 착륙으로 떠들썩할 때 국내에서는 ‘사교육 카르텔’과 ‘킬러 문항’ 제거 문제로 부산했다. 인도의 인재들이 공대 입학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 수험생들은 의대 입시 전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의대 입학을 위해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공대를 중퇴하는 학생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자퇴생은 1874명으로 이 중 76%가 이과생이었다. 대다수가 반수 재수를 통해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킬러 문항 배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의 변별력이 크게 낮아진 올해 이공계 탈출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치러진 9월 모의시험에서 n수생 비중은 22%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1월 수능에선 n수생 비중이 30%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우수한 학생들이 미래가 안정적인 의대에 지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꿈을 잃어버린 시대’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다만 인도 등 다른 나라 우수 인재들이 우주와 실리콘밸리의 CEO를 꿈꿀 때 우리 인재들은 병원 진료실에 안주할까 두려울 뿐이다. ‘입시 카르텔’을 깨는 것 못지않게 이 같은 현상을 바로잡는 사회적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얼마 전 만난 서울 소재 모 대학 총장의 개탄이 귓가를 맴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을 끌고 온 경쟁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