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 통하는지 알면서도 삭발·단식하는 野 의원들
“국민들이 삭발 투쟁에 공감하지 않는 건 다 알고 있어요.”

최근 대여 투쟁을 위해 삭발한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이 털어놓은 말이다. 이 의원은 “구태 정치처럼 보이는 것도 알고 있다”며 “그래도 삭발이라도 하지 않으면 지지층에 욕을 먹는다”고 했다.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정부·여당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모습을 비추면 강성 지지층에 눈치가 보인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 내각 총사퇴’를 내건 이재명 대표의 무기한 단식 투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개딸’만을 겨냥한 이 대표의 단식은 효과가 없지 않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지난주 민주당 지지율은 34%로 전주 대비 7%포인트 올랐다. 지지율 급등을 두고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단식 농성이 지지층 결집 효과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정부·여당과의 협치가 불가능해 삭발·단식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가피한 투쟁’이라기보다 ‘모든 것의 정쟁화’를 위한 선전·선동으로 보는 국민이 더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규탄한 장외 투쟁이 대표적 사례다. 당내에선 “오염수가 정말로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일부 나오지만, 지도부는 주말마다 거리에 나와 “오염수 방류를 용인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고 외치고 있다. 자극적 표현이 난무하는 선전·선동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다. 실제 민주당 추산으로 지난달 26일 5만 명이 모인 첫 집회와 비교해 이달 9일 참석 인원은 1만5000명에 그쳤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단식과 투쟁이 공감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건 우리 당의 자충수”라며 “차라리 지워지지 않는 문신으로 투쟁 의지를 새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고 자조했다. 확장성 없이 지지층만 의식하는 정치가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탄식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대정부질문에서 “정치는 절대로 진전되고,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치가 역행하고 있다는 취지의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발언에 대한 대답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지지층만 보는 삭발·단식에서 벗어나 진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 총리의 평가가 인사말이 아니라 사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