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크 조코비치가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노바크 조코비치가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세계랭킹 2위)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웅크려 고개를 묻었다. 약 2만4000명의 관중이 보내는 기립박수 속에서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오랜 기간 이어진 테니스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 논쟁’에 마침표를 찍고 주인공으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노바크 조코비치가 11일(한국시간) US오픈 우승 후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사진이 새겨진 상의로 갈아입고 이를 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바크 조코비치가 11일(한국시간) US오픈 우승 후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사진이 새겨진 상의로 갈아입고 이를 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코비치가 다시 한번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27·러시아·3위)를 3-0(6-3 7-6<7-5> 6-3)으로 물리쳤다. 올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자 자신의 통산 24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이는 남녀 선수를 통틀어 마거릿 코트(호주·은퇴)의 메이저대회 단식 최다 우승과 타이기록이다. 프로선수들의 메이저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 24회 우승한 것은 조코비치가 유일하다.

‘테니스 빅3’로 불리던 경쟁자들은 일찌감치 꺾였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2·스위스)는 메이저대회 우승 20회를 끝으로 은퇴했고, 22회 우승을 달성한 라파엘 나달(37·스페인)은 내년 은퇴를 예고한 상태다. 1987년생인 조코비치는 이들보다 어리고 여전히 체력과 경기력이 왕성하다. GOAT 논쟁의 정답이 조코비치라는 데 반론의 여지가 없어진 셈이다. AFP통신은 이날 조코비치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테니스의 왕”이라고 극찬했다.

올해 조코비치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6세, 현역 선수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호주오픈, 프랑스오픈을 모두 휩쓸었고 윔블던 대회에서는 준우승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다만 최근 US오픈에서의 흐름이 썩 좋지 않은 것은 변수였다. 2018년 세 번째 우승을 거둔 뒤 2019년과 2020년에는 4라운드에서 연속 탈락했고 2021년에는 결승에서 메드베데프에게 졌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아 미국 입국이 금지돼 출전할 수 없었다.

올해 코로나19 백신 규제가 완화되면서 그는 2년 만에 설욕에 도전했다. 지난 4년간의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그는 예선부터 내내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2라운드 우승으로 일찌감치 세계랭킹 1위 복귀를 확정 지었고 준결승전에서는 이번 대회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벤 셸턴(20·미국)에게 완승을 거뒀다. 셸턴은 “조코비치는 지금껏 내가 상대해본 선수들과 완전히 달랐다”며 “경기 내내 집중력이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결승에서는 2년 전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메드베데프를 만났다.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경기 시작 후 메드베데프의 첫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기선을 잡았고 1세트를 6-3으로 수월하게 따냈다. 2세트에서 메드베데프의 반격에 다소 고전했지만 타이브레이크 끝에 2세트까지 가져오며 유리한 고지를 따냈다. 메드베데프는 3세트에서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조코비치가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선수를 꺾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16분에 불과했다. 결승에서 패한 메드베데프가 “여기서 지금까지 (은퇴하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것이냐”며 그의 꾸준함을 농담을 섞어 칭찬하자 조코비치는 “이런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은 언제나 놀랍고 특별한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시상식에 조코비치는 ‘24’와 ‘맘바 포에버’를 새긴 셔츠를 입고 나섰다. ‘맘바’는 2020년 헬기 사고로 숨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애칭으로 24는 그의 등번호다. 그리고 이날 조코비치가 달성한 메이저대회 승수이기도 하다. 조코비치는 “코비는 내가 가장 의지한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테니스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조코비치지만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꾼다”고 밝혔다. 그는 “몸 상태가 좋고 의욕도 넘쳐 더 많은 메이저·테니스 대회에서 더 많은 업적을 세우는 데 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