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가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2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무효 판결이 나왔던 1심 판결이 뒤집혔다. 일부 직원만 정년 연장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구조도 연령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사례가 나오면서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도 무효라는 판결이 잇따랐던 상황에서 기업 승소 사례가 나오면서 노사 간 법리 다툼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금 30% 삭감에도 “유효”

"정년 안 늘린 임피제, 무조건 무효 아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38-2부(부장판사 민지현)는 인국공 퇴직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1심을 뒤집고 최근 회사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인국공은 3급 이하 근로자의 정년을 만 59세에서 60세로 연장하고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이전부터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2016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2급 이상 근로자들의 정년이 기존과 같은 만 61세로 유지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정년이 연장되지도 않았는데 임금만 삭감됐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퇴직자들도 모두 2급(전문위원) 근로자였다.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방법은 지난해 11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급 이상 근로자의 급여는 임금피크제 도입 4년 차 때부터 기존의 70% 수준으로 삭감됐다”며 “57세 이상이 되면 연령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감액기간과 지급률이 이례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인국공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의 창업, 구직 등을 지원하는 운영지침을 마련해 근로자의 불이익을 상쇄하려고 한 점도 판결에 반영했다.

엇갈리는 판결…치열한 법리싸움 예고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모든 직원의 정년이 일제히 연장되지 않는 임금피크제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아서다.

인국공과 마찬가지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승소하긴 했지만, 모든 직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한 대형로펌 노동담당 변호사는 “고위직만 정년 연장을 안 한 데다 임금 삭감 폭도 작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며 “대법원까지 간다면 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로선 불안감이 다소 잦아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5월 KB신용정보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졌지만, 8월 메리츠화재가 같은 쟁점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KB신용정보는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부터 연봉이 기존의 45~70%로 깎이는 구조가 문제가 됐다. 반면 메리츠화재의 경우 급여를 최대 50% 삭감하는 구조임에도 시간에 따라 단계별로 임금이 깎이도록 설계된 것이 승소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재판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선 정년 연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며 “업무 강도를 반드시 경감해줄 법적 의무가 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임금 삭감 폭 등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와 기업의 보상 조치 내용이 승패를 좌우할 요인으로 꼽힌다.

박시온/김진성 기자 ushire908@hankyung.com